택시요금 3000원, 5만원짜리 지폐 내밀었더니…

  • 입력 2009년 6월 23일 18시 59분


5만원권 지폐가 시중에 유통되기 시작한 23일 오전 한국은행 화폐수급팀 객장에서 한 시민이 교환한 5만원권 신권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
5만원권 지폐가 시중에 유통되기 시작한 23일 오전 한국은행 화폐수급팀 객장에서 한 시민이 교환한 5만원권 신권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
#1. 김영희(34·서울 마포구) 씨는 23일 저녁 전셋집 가(假)계약을 하면서 5만 원짜리 지폐 20장을 집주인에게 건넸다. 종전 같으면 1만 원짜리 100장을 묶은 두툼한 돈다발을 준비해야 했겠지만 대금지불이 훨씬 간편해졌다.

#2. 떡볶이장수 정모(43·서울 서대문구) 씨는 23일 하루 동안 거스름돈을 준비하기 위해 은행을 3번이나 가야 했다. 떡볶이와 순대 2000~3000원어치를 먹고 5만 원짜리 지폐를 낸 손님이 많아서였다.

5만 원권이 23일부터 시중에 풀리면서 벌써 일상생활에서 크고 작은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다. 1973년 1만 원권 출시 이후 36년 만에 새로운 최고액권이 나온 첫날, 대다수는 지폐 휴대가 편리해진 점과 소장가치가 높을 것이라는 점에 주목한 반면 일부는 예상치 못한 불편을 호소하기도 했다.

●밤새며 신권 기다린 사람들

한국은행은 이날 오전 6시부터 금융회사 본점과 한은과 입출금 거래를 직접하는 은행 지점에 5만 원권 3292만4000장(1조6462억 원)을 공급했다. 서울 중구 소공동 한은 본점 발권국 화폐교환 창구에는 앞 일련번호 지폐를 순서대로 나눠주지 않는다는 사전 홍보에도 15명 정도가 밤새 노숙을 하며 순서를 기다렸다. 22일 오후 9시부터 밤을 새며 한은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는 조종국(66·일용직) 씨는 "앞 번호를 순서대로 주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지만 5만 원권을 한은에서 처음 받고 싶어 밤을 샜다"고 말했다. 밤을 새던 한 고객은 새벽 2시 경 100만 원이 든 가방을 날치기 당했다가 함께 줄을 서 있던 다른 사람들이 날치기범을 잡아줘 가방을 되찾기도 했다.

은행 문이 열린 9시부터 한은과 시중은행에 5만 원권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오후에는 일부 은행 지점의 현금입출금기(ATM) 앞에서는 길게 줄을 서는 모습이 많아졌다. 외국계 은행에서 근무하는 황유미(26) 씨는 "아직 우리 은행에서는 5만 원권 교환이 되지 않아 신한은행 광화문지점을 찾았다"며 "발행 첫날 빠른 번호 지폐를 받아놓으면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5만 원권 인출이 가능한 ATM은 지점마다 1대 밖에 없고 일부 영업점에는 아직 새 ATM이 없어 고객들이 5만 원권을 구하기는 여의치 않다.

●은행 밖에선 우려 반, 기대 반

택시기사들은 거스름돈을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본보 기자가 이날 오후 택시를 탄 뒤 요금이 3000원 쯤 됐을 때 내리면서 5만 원 지폐를 건네자 기사인 이진혁(45) 씨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1만원 권도 넉넉히 준비해야겠다, 거스름돈 부담이 만만치 않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5만 원권 출시로 화폐가치가 떨어져 축의금이나 세뱃돈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서울 송파구 신천동에 사는 회사원 김수연 씨(여·27)는 "축의금을 기본적으로 5만 원은 내야 할 것 같아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대구에 사는 황모 씨(여·30)는 "아직 익숙치 않아 그런지 5만 원 권은 화폐라기보다 상품권 같은 느낌"이라고 전했다.

유통업계는 신권 출시로 소비가 늘 것으로 기대했다. 롯데백화점은 26일 하루 핸드백, 샌들 원피스 등의 패션 소품을 5만 원에 판매하는 행사를 열었다. 신세계백화점은 26~28일에 매일 선착순 200명에게 5만 원권 지폐를 교환해주며, 여성용 화장품이나 액세서리 세트를 5만 원에 판매하기로 했다. 이재진 신세계 강남점 마케팅팀장은 "지폐 한 장으로 살 수 있는 상품이 많아져 고객들의 씀씀이가 커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10만 원 수표 벌써 감소세…위조대비 총력전

한은은 10만 원짜리 자기앞수표가 점차 사라지면서 수표 발행 및 보관비용 등이 감소함에 따라 연간 3200억 원의 비용절감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국민은행 여의도 영업부에서는 10만 원 자기앞수표 발행량이 평소보다 5% 정도 줄었다.

한국은행과 경찰은 자금세탁, 뇌물수수, 위폐제조 등의 불법 행위가 늘어날 수 있다고 보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특히 한은은 '지폐 위조방지장치 확인카드' 4만 개 제작해 현금 유통이 많은 금융회사에 배포키로 했다. 진짜 지폐 앞면의 인물 그림 오른쪽에 있는 동그란 무늬에 이 카드를 대면 숫자 '50000'이 보이지만 위폐에는 이 숫자가 나타나지 않는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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