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 이력추적제가 전면 실시된 첫날인 22일 오후 4시 반경. 농산물품질관리원 단속반 직원 3명이 경기 과천시 문원동의 A 정육점에 들어섰다. 조명이 꺼진 정육점 앞 진열대에는 쇠고기 모형물 대여섯 덩어리만 놓여 있었다. 쇠고기의 원산지 등 이력을 알려주는 ‘개체식별번호’가 적힌 라벨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 준비 안 된 현장
단속반 직원이 정육점 안으로 들어가 라벨 부착 여부를 물으니 정육점 주인 부부는 당황한 표정으로 선반 여기저기를 뒤졌다. 이들이 내놓은 것은 아무것도 기입되지 않은 깨끗한 플라스틱 표지판 10여 개. 부인 김모 씨는 “라벨을 만드는 기계는 너무 비싸서 개체식별번호를 적어 넣을 표지판을 새로 제작했다”며 “앞으로 표지판에 번호를 적어 진열대에 두겠다”고 말했다. 시행 첫날이어서 소매점들의 준비가 부족했을 수도 있지만 정착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어보였다.
과천시 별양동의 B 정육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농관원 단속반이 신분증을 내보이자 오히려 “제도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육우도 번호 표시 대상인가” 등 새 제도에 대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제도 이행 방법을 잘 몰랐던 이 점포는 쇠고기 제품별로 번호 라벨을 붙여야 하는 규정을 지키지 않고 진열대 앞에 번호 라벨 하나만 대표로 붙여 놨다.
단속반 관계자는 “다른 종류의 쇠고기 제품이 섞여 있을 수 있으니 진열대에 번호 라벨 하나만 붙이면 안 된다”며 “제품별로 라벨 붙이는 게 힘들면 같은 쇠고기 제품별로 분류해 해당 번호를 적은 표지판이라도 붙여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 소비자도 무관심
자금력이 있는 대형 판매점들은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한 모습이었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농협하나로클럽 양재점 한우 판매코너 진열대에 놓인 한우 소포장들은 하나같이 노란 라벨을 달고 있었다. 소 한 마리마다 고유하게 부여된 개체식별번호가 적힌 라벨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쇠고기 이력추적제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 판매코너에서 기자가 지켜본 고객 11명 가운데 터치스크린 모니터를 사용해 쇠고기 이력을 확인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과천시 별양동 롯데슈퍼 새서울점에서 만난 주부 이모 씨도 “이력추적제를 실시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어떻게 확인해야 하는지 잘 몰라 그냥 믿고 사려고 한다”고 했다.
농림수산식품부 측은 “휴대전화를 이용할 경우 ‘6626’을 누른 뒤 무선인터넷에 접속하면 이력추적프로그램이 나타난다”면서 “이어 입력창에 개체식별번호를 넣으면 쇠고기의 원산지, 등급, 출생년월일 등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정부는 원산지를 속이거나 광우병에 걸린 소를 12자리 번호로 신속하게 식별하기 위해 이력추적제도를 도입했다. 계도기간이 끝나는 9월 이후에는 쇠고기 판매업소 등이 관련 규정을 위반할 경우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