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기술(KOPEC)은 한국 원전기술의 해외진출 선두에 서있다. 한국 발전소 설계 기술 자립을 위해 정부 주도로 설립된 KOPEC는 이제 원자력 기술의 본고장인 미국 유럽 수출을 꿈꾸고 있다. 선진국에서 어깨 너머로 배운 기술을 다듬어 해외 시장에서 인정을 받는 수준에 이른 것.
해외사업 진출은 2005년 미국 웨스팅하우스사(社)와 ‘NuStart’ 프로젝트 기술용역 계약을 체결하면서 물꼬를 텄다. 18개월간 진행된 이 프로젝트에서 KOPEC는 기술 지원 업무를 맡았다.
지난해 3월에는 웨스팅하우스와 또 다른 프로젝트 설계를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이 사업은 기존에 기술지원 수준에 그쳤던 협력 단계에서 한 단계 나아가 해당 업무를 책임지고 수행하는 ‘패키지형’ 방식이다. 이 프로젝트 설계의 대부분은 한국에서 이뤄지고 몇몇 인력만 미국 이탈리아 현지에 나가 웨스팅하우스 등과 함께 업무를 진행한다.
KOPEC 관계자는 “이번 계약 금액은 약 300억 원에 이르며 앞으로 2010년까지 매년 50여 명의 기술자가 참가하는 비중 있는 계약”이라며 “이번 프로젝트로 후속 프로젝트 참여를 위한 기반을 다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OPEC에 미국 시장 진출은 의미가 크다. 미국은 현재 100기 이상의 원전이 가동되고 있고 앞으로 2020년까지 25기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계획돼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도 한국 원전 기술의 가능성이 부각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프랑스 국제핵융합실험로(ITER)의 전기상세설계 용역을 수주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ITER는 미래 에너지원으로 각광받고 있는 핵융합로 국제 공동 연구개발 사업을 위해 출범한 국제기구. 한국을 비롯한 7개국이 함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스 국립과학연구소가 발주한 ‘그리스 GRR-1 연구용 원자로 설계개선 용역’에서도 올해 1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안승규 KOPEC 사장은 “KOPEC는 원전 설계기술 자립 이후 14개월 만에 세계 유명한 설계회사들을 제치고 수주에 성공했다”며 “국제시장에서 한국 원전 설계 기술을 인정받았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용역의 최종 계약이 체결되면 KOPEC는 그리스의 5MW급 연구용 원자로 1차 냉각계통의 설계 개선을 위해 컨설팅을 하게 된다.
이 회사는 해외에서 두각을 나타내기까지 국내에서 차근차근 실력을 다졌다. 1975년 회사 설립 당시만 해도 한국은 원자력 발전의 불모지였다. KOPEC 엔지니어들은 설립 뒤 약 10년간 미국 벨기에 프랑스 등 원전기술 선진국에 파견돼 기술교육을 받았다. 그 결과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설계 기술을 국산화했다. 1995년 독자기술로 한국형 표준원전 ‘OPR 1000’을 개발해 울진 3, 4호기와 영광 5, 6호기 등에 적용했다. 이후에도 현재 건설 중인 신고리 3, 4호기도 이 회사 기술을 활용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