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여자, 돈 중 뭘 좋아하는지 취향을 파악하는 건 기본이에요. 집을 리모델링해주거나 부모님 생일잔치비용, 해외세미나비용을 주기도 하고 세미나 장소도 마련해줘요. 평가위원이 요구하면 친척이나 지인이 운영하는 업체에 일감도 주고요."(B건설사 관계자)
이처럼 치열하게 진행되는 공공부문 턴키(일괄입찰)방식 공사 수주를 위한 로비전에 일대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현재는 교수, 연구원, 공무원 등 3000여명의 풀 가운데 공사별로 10~15명의 평가위원을 뽑아 심의를 한다. 국토해양부는 내년 1월부터 평가위원을 70여명에서 많아도 1000명 미만으로 줄이고 명단을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으로, 조만간 이를 확정할 예정이다.
●거액 오가고, 위원명단 입수 경쟁도 치열
턴키 평가위원은 심사 전날 밤이나 당일 아침에 통보하기 때문에 누가 어떤 공사를 심의하는지 사전에 알기 어렵다. 이 때문에 회사별 여력에 따라 대형사는 3000여명 모두를, 중견사는 1000명 또는 그 이하를 '상시관리'하고 있다. 턴키공사규모는 통상 300억 원이 넘고 수 천억원에 이르는 경우가 많은데다 다른 공사에 비해 이윤이 많이 남기 때문에 건설사들은 수주에 사활을 걸고 있다. 설계비 등으로 전체 공사비의 3% 가량을 미리 쓰기 때문에 수주를 못하면 이를 고스란히 날려야 해 절박감이 더 크다.
건설사관계자들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뛰고 있다는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처음부터 돈을 달라는 사람이 제일 편하고 좋다. 안 만나겠다고 해도 자꾸 찾아가면 결국 요구 사항을 말하는데 대형 연구 용역이나 자기가 아는 하청업체와 거래하라는 등 큰 걸 요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대형공사 평가위원으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말하면 안 들어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평가위원대상자를 섭외해 다른 위원들을 대상으로 뛰게 하는 건설사도 있는데, 상당히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다"고 귀띔했다.
평가위원으로 누가 선정될지 미리 알아내기 위해 발주처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지연 학연 혈연 등 가능한 인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하는 것은 물론이다.
거액의 금품이 오가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 2006년 서울 송파구 장지동 동남권유통단지(가든파이브) 턴키공사 심의에서 대형 건설사들이 평가위원들에게 현금 3000만 원, 5000만 원 등을 주고 1억 2000만 원의 연구용역 등을 제공한 사실이 지난해 초 검찰에 적발됐다.
●"소수 대상 로비 더 치열해질 것"
건설사들은 비용은 물론 인력, 시간 등을 대규모로 투입해야 하는 현행 제도에 대해 피로도가 너무 높다고 호소한다. 현장소장들 사이에서는 발주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데 더 공을 들여야 해 현장 관리가 어렵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상사가 타사는 어떻게 로비하는지, 효과적인 로비방법이 뭔지 아이디어를 내라고 쪼아 죽을 맛"이라고 토로했다. 평가 결과에 대한 불신도 적지 않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심의날 아침에 심의장소에 가 보면 평가위원들이 어느 건설사가 제공한 차를 타고 오는지 알 수 있다. 이른바 '손잡고' 온 위원이 제일 많은 건설사가 공사를 따 내면 실력으로 따 냈다고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건설사들은 지금과 같은 로비 방식은 위험이 큰데다 불법 로비 사실이 적발될 경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용도 만만찮다고 토로한다. 한 건설사는 몇 년 전 금품제공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게 된 직원이 승소할 수 있도록, 개업한지 얼마 안 된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를 선임했다. 공식 수임료는 1억 5000만 원이었지만 비공식으로 5억 원을 더 요구해 이를 지불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회사가 끝까지 책임지고 봐주지 않으면 누가 몸을 던지겠느냐"고 말했다.
국토부가 평가위원에 대해 재산을 공개하고 윤리규정을 엄격히 적용하겠다는 방침이지만 건설사들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후보군이 줄어들면 이들을 대상으로 더욱 강하고 집중적인 로비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며 "대규모 인원을 관리할 여력이 적었던 중견사들까지 가세해 로비가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10일 서초구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주최로 열린 '설계시공 일괄대안입찰의 설계심의제도 개선방안' 공청회에서도 건설사 관계자들은 현 제도는 문제점에는 공감하면서도 새 제도의 효과에는 의문을 제기했다. 새 제도는 로비를 줄어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효율적인 로비'를 가능하게 할 뿐이라는 것.
"제도는 다시 또 바뀌니까, 새 제도가 도입돼도 방심하지 말라고들 합니다. 영업 안 하고 손놓고 있으면 괘씸죄만 가중될테니까요."(한 건설사 관계자)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