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아시아지역본부장인 남영우 사장(58)의 고객은 20억 명이다. 세계 인구의 3분의 1. 중국 일본을 제외한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호주 등 아시아 대부분의 지역이 그가 공략하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그가 총괄하는 LG 현지법인만 8개, 담당 국가는 20개가 넘는다. 남 사장은 “아시아 지역은 인구는 많지만 시장 규모는 미국 유럽 등에 비해 아직 작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도 가장 작다. 그래서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분석했다.
15일 싱가포르 중심가 선텍타워에 있는 LG전자 아시아지역본부 사무실에서 남 사장을 1시간 반 동안 인터뷰했다. 지난해 1월 이곳에 부임한 그의 첫 다짐은 “아시아 시장에 LG의 톱브랜드 이미지를 뿌리 깊게 심어놓겠다”는 것이었다.
○ 아시아 고객의 마음을 뺏는 ‘LG 현장 사령관’
남 사장은 “아시아 소비자가 LG 브랜드를 알고 있다는 차원에 머무를 수 없다. ‘전자·정보기술(IT)업계의 톱브랜드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LG를 떠올릴 수 있도록 만들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려면 아시아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제품과 서비스가 있어야 한다는 게 남 사장의 지론. 그는 아시아 고객의 숨겨진 욕구를 발견해 그것을 충족시켜준 대표적 히트제품으로 ‘재즈(Jazz)TV’를 들었다.
인도에서 액정표시장치(LCD) TV를 소유한 사람들은 이른바 ‘프리미엄 고객’이다. 이들은 큰 집에 넓은 거실을 갖고 있고 주말에 파티를 즐긴다. TV도 주변 소음이 큰 상태에서 함께 보는 경우가 많다. 남 사장은 “전반적인 TV 경쟁은 화질이나 두께지만 인도에서만큼은 음향 기능을 강화해야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TV를 켜는 순간 양쪽 옆에서 숨겨진 스피커가 나타나 강렬한 사운드를 내는 ‘재즈TV’가 개발됐다. 이 TV는 인도 시장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지난해 1월 18.0%였던 LG LCD TV의 인도 시장점유율을 올해 4월 말 현재 27.6%까지 끌어올렸다.
아시아 고객의 욕구나 기호를 파악하기 위한 노력은 쇼핑 동선(動線) 파악까지 이어진다. 전문 연구기관에 의뢰해 쇼핑객에게 특수 안경을 끼게 한 뒤 소비자가 백화점 전자매장에 들어설 때 가장 먼저 눈길을 주는 제품은 무엇인지, 냉장고를 본다면 어느 부분부터 보는지 등을 분석한다. 남 사장은 “철저한 관찰과 분석이 없으면 고객을 감동시키는 히트 제품이 결코 나올 수 없다”고 설명했다.
남 사장은 ‘20억 명 소비자 시장’을 공략하는 최고경영자(CEO)답지 않게 조용한 성격이다. 조직도 조용히, 그러나 철저히 챙기는 스타일이다. 부하 직원에게 절대로 하대하지 않고 존댓말을 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LG를 아시아 톱2브랜드로 올려놓겠다”
○ 부하 직원들의 마음도 사로잡은 ‘글로벌 CEO’
아시아지역본부의 이은지 차장은 “남 사장은 인도법인을 방문할 때는 꼭 갈비를 수십 kg씩 사가지고 가 한국 직원들에게 나눠주곤 한다”고 귀띔했다. 인도에서는 종교적 이유로 쇠고기를 구입하기 힘들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글로벌 CEO’답게 현지 채용 직원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소통 문제에 특히 신경을 쓴다. 그는 “사무실처럼 공개된 공간에서 한국인 직원끼리 이야기할 때는 아무리 사적인 대화도 반드시 영어로 하라”고 지시했다. ‘중요한 정보는 한국 스태프들 간에만 주고받는다’는 오해를 낳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영어 쓰기를 잘 실천한 직원을 매주 뽑아 시상하기도 했다. 남 사장은 “나 역시 영어보다는 한국어가 편하다. 그러나 만약 내가 한국어로 8명의 법인장에게 경영 지침을 전달하면 그들이 영어로 번역해 현지 직원에게 전하는 내용이 다 제각각이 될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영어를 써야 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남 사장은 1년의 절반 이상을 싱가포르 사무실보다 아시아 시장 곳곳을 누비는 데 쓴다. LG 관계자들은 “남 사장은 언제나 비행기 퍼스트 클래스를 이용해도 되는데 가까운 거리는 이코노미석에 앉는다. 경비 절감도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고 전했다.
○ 프리미엄 전략으로 노키아 추격 나서
아시아 시장에서 LG의 강력한 경쟁자 중 하나가 휴대전화로 유명한 핀란드 노키아다. 남 사장은 “휴대전화 시장에서 노키아가 60%라면 삼성은 20%대, LG는 아직 8% 수준”이라며 “휴대전화에서 노키아의 절반 수준만 따라가면 TV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의 강세에 힘입어 ‘톱2 브랜드’ 중 하나로 도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LG전자의 5개 제품이 시장 1위를 달리고 있는 인도네시아에서도 휴대전화는 노키아에 크게 밀린다. 올 4월 말 기준으로 노키아의 시장 점유율은 55%인 반면 LG는 4%에 불과하다.
LG의 노키아 추격 전략의 핵심은 ‘프리미엄 시장 공략’이다. 그래서 LG 휴대전화의 판매 매장은 아시아 국가의 가장 노른자위 지역에 집중돼 있다. 남 사장은 “신문 TV 옥외광고, 제품 전시 등 모든 면에서 프리미엄 전략을 펴고 있다. 고가(高價)의 풀터치폰이 시장에서 인기를 끌면서 점유율도 계속 상승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프리미엄 전략의 효과는 결과적으로 중저가(中低價) 시장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LG전자의 전체 매출에서 아시아 시장 비중은 아직 10%대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주요 제품의 시장성장률이 8∼22%에 이를 정도로 빠르게 시장이 커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아시아는 LG의 주요 성장엔진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싱가포르=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