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경제입국 보좌한 관료로
개발시대 경제정책 이해 도움되길…
高인플레-부동산 투기 등 아쉬움도
이제 필자가 걸어온 이야기를 마감할 때가 왔다. 돌이켜보면 필자는 성공한 정책가도 아니고 성공한 경제학자도 아니었다. 경제 전문가로서 자기의 주견이 있었으나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정치적, 행정적 수완이 모자라서 주위 환경과 타협하는 정부 관료에 불과했다. 다만 박정희 대통령의 강력한 정책의지를 시장경제 이론의 틀 안에서 소화하려고 안간힘을 다한 것은 사실이다.
어쨌든 나는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개발연대의 경제정책의 명암을 설명할 수 있었던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이 회고록이 지난날의 경제정책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고 후대들이 선대들의 공과를 거울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바람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과거의 경제 운영에서 아쉬웠던 점 몇 가지를 적어둔다.
첫째, 후진국에서는 정부가 경제개발을 주도하지 않으면 경제성장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개발정책으로 경제가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복잡해진 경제구조를 정부가 관리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므로 경제발전에 시동이 걸리면 점진적으로 정부 역할을 시장경제의 자율기능으로 넘겨야 한다.
둘째, 인플레이션을 수반한 고도성장이 1970년대 경제발전의 특징이다. 여기에는 두 차례의 오일 파동과 같은 불가항력적인 요인도 있었지만 수입이 개방되지 않은 상태에서 통화와 총수요가 팽창하면 인플레이션이 따르기 마련임을 알면서도 당시의 여러 사정으로 개발수요, 유치산업 보호를 위한 수입 통제, 물가 사이의 상충관계를 적절히 조정하지 못한 것은 유감이다.
셋째, 토지정책을 수립하지 않고 개발정책을 추진한 결과 부동산 투기와 땅값 상승이 언제나 정부를 괴롭혀 왔고 오늘날에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토지의 사유권은 인정하되 이용권을 사회화하는 방향으로 토지정책을 확립했어야 했다.
넷째, 건전한 경제운영에 필수적인 정책은 장기에 걸쳐 일관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정치 경제 환경이 어렵다 하여 1972∼74년에 시행한 기업공개와 기업집중 및 부실화 방지정책을 일관적으로 추진하지 못했기 때문에 1997년의 외환위기를 불러오게 된 것이다.
다섯째, 대내적 구조조정을 통해 금융업체 및 기업의 경영 방식과 정부 정책 관행을 어느 정도 국제기준에 맞추어 놓지 않고 국내 경제를 개방하면 외환위기와 금융파탄이 올 수 있다.
여섯째, 정부가 대대적인 경기부양 정책을 실시하고자 할 때에는 사전에 주요 원자재의 공급능력과 고용효과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물가상승과 같은 의외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일곱째, 정치적 국면 전환을 위해 빈번히 경제장관을 바꾸는 것은 대통령 자신에게 확고한 목적의식이나 경륜이 없거나 사람 보는 눈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정책의 일관성이 없다면 그것은 장관보다 대통령에게 원인이 있는 것이다.
끝으로, 국민에 대한 경제교육이 부족했다. 천연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살아야 한다. 그러자면 노동과 머리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 노동으로 경쟁하자면 노사(勞使)가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하고 머리로 경쟁하자면 과학 기술과 사회 각 분야의 문화수준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모든 국민이 잘살 수 있게 되려면 경제성장과 공정분배의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교육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이러한 가치관을 심어주도록 좀 더 노력했어야 했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