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 기자에게 축의금은 관심이 많이 가는 주제다. 한국 사회의 축의금은 시대가 변해도 친소, 이해관계에 따라 기본적으로 3단계로 이뤄진 시스템을 유지해 왔다. 좀 덜 친해도 모르는 척할 수 없는 관계일 때 내는 ‘면피성 축의금’, 멀지도 아주 가깝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내는 ‘기준 축의금’, 이보다 친밀한 상대에게 내는 ‘적극적 축의금’의 3단계로 나눠 볼 수 있다. 주로 친족이 내는 고액 축의금은 개인 사정에 따라 따로 정해진다.
평생 공기업에 다니며 축의금을 낸 한 어르신의 장부에 적힌 3단계 축의금의 액수는 △1970년대 2000, 3000, 5000원 △1980년대 5000, 1만, 2만 원 △1990년대 초반 1만, 2만, 3만 원 △1995년∼2000년대 초반 2만, 3만, 5만 원 △2000년대 중반 이후 3만, 5만, 10만 원이었다. ‘1-2-3’ ‘2-3-5’ ‘3-5-10’ ‘5-10-20’의 비율을 반복하며 계속 상승하는 모습이다. 숫자들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축의금을 내는 한국인의 속마음이 읽힌다. 어떤 경우에도 위 단계의 축의금은 아래 단계 축의금의 2배를 넘지 않는다. 한 단계 낮은 친소관계를 돈으로 환산할 때 절반 밑으로 평가하는 게 인정상 부담스러워서일 것이다.
축의금은 물가보다 빨리 오르는 경향이 있다. 지난 10년간 소비자물가는 36% 상승했지만 ‘기준 축의금’은 10년 전 3만 원에서 5만 원으로 67% 올랐다. 최근 결혼한 사람들의 축의금 장부를 들여다보면 3만 원짜리 봉투의 비중은 줄고 5만, 10만 원짜리의 비중이 급속히 커지고 있다. 밥값이 비싼 호텔 결혼식 등이 늘어난 영향으로 강한 상승압력을 받고 있는 것이다. 3만, 5만 원짜리 축의금 봉투를 내면서 가족이 함께 결혼식에 참석하는 게 부담스러운 게 어디 나만의 일일까. 이런 상황에서 발행된 5만 원짜리 고액권은 축의금 액수를 끌어올릴 개연성이 충분하다.
일종의 ‘사회보험’인 축의금 또는 부조금은 폐쇄적인 전통 농경사회의 유산이다. 인구 이동이 적은 시대에는 이웃집 혼사에 축의금을 내뒀다가 시간이 한참 흘러도 내 자녀가 결혼할 때 돌려받을 가능성이 컸다. 쌀 등 현물로 이뤄진 부조는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받지 않아 “그새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데 이것밖에 안 넣었나” 하는 불만이 생기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공동체의 범위가 불확실하고 이동이 많은 현대 도시생활에서는 이런 원칙이 지켜지기 어렵다. 상호부조라는 원래의 목적과 달리 힘 있는 사람 쪽으로 축의금이 몰리는 불평등한 관행으로 변질되기도 쉽다.
5만 원권 때문에 축의금이 늘어난다고 불평하는 건 쉬운 일이다. 그보다는 이런 일을 계기로 축의금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더 나은 대안을 찾는 게 사회를 밝게 가꾸는 길이다.
박중현 경제부 차장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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