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손분희 씨(38·서울 송파구 풍납동)의 지갑은 항상 불룩했다. 현금과 신분증 외에도 4장의 신용카드를 갖고 다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신한 하이포인트 나노 카드’를 만들면서 지갑이 가벼워졌다. 이 카드는 소비자가 혜택을 받고자 하는 가맹점을 골라 만드는 ‘DIY(Do It Yourself·자체 제작) 카드’다. 손 씨는 “매달 집 앞 하나로마트에서 50만 원을 쓰는데 가맹점을 하나로마트로 지정했더니 1년에 30만 원가량 할인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고 말했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낸 천편일률적인 제품 대신 소비자 개인의 취향에 맞춘 1인 서비스가 보편화되면서 금융업도 개별 소비자의 경제적 여건과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서비스를 골라 제공하는 ‘맞춤형 금융’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한국이 선도하는 맞춤형 금융서비스는 앞선 정보기술(IT)과 까다로운 소비자 특성, 치열한 업계 경쟁과 맞물려 나타난 현상으로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벤치마킹하고 있다.
○ 소비자가 만드는 맞춤형 카드
한국의 신용카드는 맞춤형 금융의 최신 트렌드를 이끄는 대표 사례로 꼽힌다.
소비자가 직접 카드 겉모양을 디자인하는 카드가 나온 데 이어 최근엔 고객이 자주 가는 가맹점을 골라 각종 혜택을 받는 ‘나만의 카드’를 만드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최근 신한카드의 ‘신한 하이포인트 나노 카드’, 하나은행 ‘내맘대로 카드’, 비씨카드 ‘트랜스폼 카드’가 맞춤형 카드로 잇달아 선보였다. 국민은행도 2005년 비슷한 개념의 ‘KB스타카드’를 내놔 현재 200만 명이 넘게 가입했다.
맞춤형 카드는 제조업에서 소비자가 자신이 원하는 PC 등 각종 제품을 스스로 만들어 주문하는 프로슈머(Prosumer)형 생산단계와 흡사하다. 신한카드의 박재욱 상품R&D센터 차장은 “지금까지는 소비자가 많은 혜택을 받으려면 여러 장의 카드를 발급받아야 했고 유행에 따라 카드를 바꿔야 했다”며 “맞춤형 카드는 취향이나 원하는 서비스가 바뀔 때 카드를 새로 만들 필요 없이 선택 서비스만 바꾸면 돼 편리하다”고 설명했다.
○ 대중화되는 맞춤형 금융상품
회사원 김태호(33) 씨는 매일 아침 하나은행 인터넷뱅킹에 접속해 ‘마이하나’ 코너에서 해외 증시와 자신의 펀드 수익률, 부동산 가격 등을 체크한다. 그는 “원하는 재테크 정보는 물론 간단한 재무설계까지 할 수 있어 인터넷뱅킹이 마치 나만을 위한 금융포털 같다”고 말했다.
국내 은행의 인터넷뱅킹은 입출금, 계좌이체와 같은 단순 업무를 주로 하던 1세대로 출발해 저비용으로 펀드, 예·적금 상품을 판매하는 2세대를 거쳐 고객 개인을 위한 맞춤형 재테크 정보와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3세대로 진화해 왔다.
맞춤형 금융상품은 예·적금 상품으로도 나와 있다. 우리은행의 ‘마이스타일 자유적금’은 상품명, 회전주기, 약정기간, 납입금액 및 주기 등을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다. 외환은행의 ‘UCC 트러스트’는 고객이 개별 주식을 직접 선정해 운용을 지시하는 주식형 특정금전신탁 상품이다.
독립금융판매그룹(GA)과 보험사가 손잡고 고객의 니즈를 반영해 개발한 ‘오더메이드’ 보험 상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국내 최대 GA인 에이플러스에셋은 흥국생명과 함께 ‘A+에셋 여우사랑 CI보험’ 등 기존 보험에 고객의 요청에 맞춰 특약을 추가한 상품을 개발했다.
고객의 투자성향과 목적에 맞춰 자산을 종합 관리해 주는 증권사 랩어카운트도 고액자산가 위주로 운영되다 최근 수십만 원대 적립식 투자도 가능해지는 등 대중화되고 있다. 하나은행 김성엽 상품개발부장은 “고객의 재테크 수준이 높아지고 다양한 금융상품에 대한 요구가 늘면서 라이프스타일과 투자성향에 맞춘 맞춤형 금융상품이 훨씬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 IT 접목되며 세계 최고 수준
국내 금융서비스가 이처럼 맞춤형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 강국인 한국의 정보기술(IT)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특히 신용카드, 인터넷뱅킹의 발전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다. SC제일은행 현재명 부행장은 “영국의 스탠더드차터드그룹에서 한국 SC제일은행의 인터넷뱅킹을 벤치마크해 세계 70여 개국의 인터넷뱅킹에 접목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회사의 경쟁이 치열하고 소비자가 유행에 민감한 점도 맞춤형 서비스가 발전하게 된 요인이다. 신한카드 박재욱 차장은 “글로벌 기업이 한국시장을 테스트 베드로 삼을 만큼 소비자 취향이 까다롭고 안목이 높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한발 앞선 맞춤형 금융서비스가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