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내집처럼”… 시프트, 집 없는 서민의 ‘주택 로또’

  • 입력 2009년 6월 30일 02시 58분


지난달 입주를 시작한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자이에서 서울시형 임대주택인 장기전세주택(시프트·SHift)은 ‘로또’로 불린다. 전용면적 59㎡의 경우, 시프트 전세가(2억2400만 원)는 주변 시세(3억5000만 원)보다 1억 원 이상 싸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2018년까지 11만 채의 시프트를 공급해 주택의 개념을 ‘사는 것’에서 ‘사는 곳’으로 바꿀 계획이다. 김재명 기자
지난달 입주를 시작한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자이에서 서울시형 임대주택인 장기전세주택(시프트·SHift)은 ‘로또’로 불린다. 전용면적 59㎡의 경우, 시프트 전세가(2억2400만 원)는 주변 시세(3억5000만 원)보다 1억 원 이상 싸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2018년까지 11만 채의 시프트를 공급해 주택의 개념을 ‘사는 것’에서 ‘사는 곳’으로 바꿀 계획이다. 김재명 기자
시세보다 20% 싸게 입주-재계약
일반분양 단지와 섞어 차별 없애
강남 한복판에… 중대형도 공급
중산층까지 흡수, 경쟁률 치솟아
사는 것’서 ‘사는 곳’으로 발상전환
다양한 평수-물량 확보가 과제

《20여 년 동안 직업군인으로 일했던 박경업 씨(49)는 2006년 전역 후 대전에서 서울로 집을 옮겼다. 박 씨는 “20년 넘게 군인아파트에서만 살다가 서울에서 집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며 “간신히 강남에 1억6500만 원짜리 전세를 구했지만 2년 뒤 또 집을 옮겨야 했다”고 말했다. 그런 박 씨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지난달 입주를 시작한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자이 59m²(이하 전용면적 기준) 장기전세주택(시프트·SHift)에 응모해 당첨된 것. 전세가격은 2억2400만 원으로 주변 시세(3억5000만 원)보다 1억 원 이상 싸다. 무엇보다 오르는 전세금에 따라 2년마다 이사를 다니지 않고 20년간 내 집처럼 살 수 있다는 게 다행스럽다. 그래서 요즘 시프트는 ‘로또’에 비유되기도 한다.》

○ 시프트, 주택의 개념을 바꾸다

서울시가 주택을 ‘사는 것’이 아닌 ‘사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시작한 시프트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2007년부터 서울시가 공급하고 있는 시프트는 최장 20년까지 주변 전세 시세보다 20% 이하 싼 금액으로 살 수 있는 서울시형 장기 임대주택이다. 지금까지 시프트 입주 경쟁률은 평균 9.4 대 1이었고 올해 2월 관악구 봉천동 관악청광플러스원의 경우 156 대 1을 기록하기도 했다.

시프트는 SH공사가 직접 짓는 ‘건설형 시프트’와 재건축아파트 단지의 일부를 시가 매입한 ‘재건축형 시프트’ 두 종류가 있다. 재건축형 시프트는 단지 곳곳에 시프트가 배치되어 있고 위치, 마감재, 내부인테리어 등이 일반 분양 가구와 동일하다. 박 씨는 “시프트가 임대 주택임에도 시설에 거의 차이가 없는 게 아주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반포자이 부근의 M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한 동이 시프트로 지정된 것이 아니라 단지 곳곳에 섞여 있기 때문에 주민들도 큰 거부감이 없다”고 말했다.

건설형 시프트인 강동구 강일동 강일리버파크 84m²에 입주한 정종숙 씨(40·여)는 “개인이랑 거래하는 것이 아니고 SH공사에 전세금을 납부해 믿을 수 있고 전세 계약 갱신일이 다가오면 ‘이번엔 전세금이 얼마나 오를까’ 마음 졸이는 일이 없어서 좋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시프트는 최장 20년까지 전세로 살 수 있지만 계약은 2년마다 갱신해야 한다. 하지만 주변 아파트 전세금이 아무리 치솟더라도 시프트의 전세 가격은 5% 이상 올릴 수 없다.

시프트는 또 ‘임대주택=인기 없는 곳’이라는 공식도 바꿔놓았다. 시프트는 은평, 장암 등 뉴타운 지역 외에도 강남 한복판인 서초구 반포동 반포 자이, 래미안 프레스티지 등에도 들어가 있다. 주택마케팅업체인 내외주건의 김신조 사장은 “지금까지 임대아파트는 시 외곽 택지개발지구 등에 공급됐지 시내에서 공급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며 “하지만 낮은 가격으로 도심 한가운데서 전세 주택을 공급하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고 설명했다.

○ 중대형 공급으로 다양한 계층에 인기

현재 공급되고 있는 시프트는 60m² 미만, 60∼85m², 85m² 이상 등 세 종류다. 기존 임대주택이 60m² 이하의 작은 주택을 공급했던 것과 달리 시프트는 전용면적 114m² 등 대형 평형까지 공급하면서 연령별로 고른 인기를 끌고 있다. 이상석 SH공사 홍보차장은 “소형 시프트는 맞벌이 부부가 많은 20, 30대 계층이 선호하고 40대 이상에서는 84m², 114m² 등 중대형이 인기”라고 설명했다. 왕십리 뉴타운 주상복합 건물에는 124m²짜리 시프트도 공급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시프트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공급량을 늘려 더욱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아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6월 현재까지 시프트는 총 10차에 걸쳐 6388채가 공급됐다. 수요에 비해 공급은 현격히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올해 3000여 채의 시프트를 추가로 공급하는 등 2018년까지 총 11만 채의 시프트를 공급할 계획이다. 서울시내에는 시프트를 새로 지을 만한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재건축 시 용적률을 높여주는 대신 용적률 상승분의 50%를 시프트로 회수하는 방안을 5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김효수 서울시 주택국장은 “다소 어려움은 있겠지만 기존 주거지역 외에도 역세권, 준공업지역에서 용적률과 각종 규제를 완화해 주는 대신 시프트를 의무적으로 도입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공급량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 “다양한 평수 공급해 저소득층 배려해야”

시프트의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지속적으로 물량을 확보하는 한편 크기를 다양화해 저소득층에 대한 배려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건국대 조주현 부동산대학원장은 “지금 시프트가 인기를 끄는 것은 강남과 같은 인기지역에 주변보다 싸게 공급됐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며 “시프트의 도입 취지인 무주택자와 저소득층의 주택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다양한 지역에 좀 더 낮은 가격으로 공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스피드뱅크 박원갑 소장은 “시프트가 주택의 패러다임을 바꾸려면 주택 유형을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며 “30∼40m²의 소형 아파트를 공급하는 등 크기를 다양화해 입주자들의 선택 폭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박 소장은 지방에서의 시프트 실시 가능성에 대해 “시프트 모델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것이 좋다고 보지만 사실상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는 지방자치단체들의 예산상 제약으로 공급 및 유지가 어려울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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