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울주군 온산국가산업단지에 있는 선경워텍은 ‘NP’시리즈라는 제품을 만드는 중소기업이다. 이 회사의 제품 원료는 놀랍게도 다우메탈 등 이웃 회사의 폐수다.
울산 남구 용연공단의 KP케미칼과 한솔EME는 섬유원료를 만들거나 산업폐기물을 태우는 과정에서 나온 폐열(스팀)을 팔아 짭짤한 수입을 올린다. 섬유 제조업체 코리아PTG가 두 회사로부터 폐열을 구입한다.
국내 산업단지에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기)가 한창이다. 다른 회사의 산업 쓰레기가 우리 회사에서는 소중한 원자재가 되고 에너지가 되는 것이다.
19일 오전 온산산업단지에 있는 선경워텍. 공장 안에는 12m³짜리 대형 원형탱크 3개가 2층과 3층에 걸쳐 설치돼 있었다. 3층에서 내려다보니 탱크 안에 대형 모터의 팬처럼 생긴 날개가 시큼한 냄새를 풍기는 황토색 용액을 휘젓고 있었다. 이 회사 이선삼 연구개발 팀장은 “우리 회사에 t당 20만∼30만 원씩을 벌어다 주는 ‘보물’”이라면서 “불과 4시간 전만 해도 이 용액은 이웃에 있는 촉매재생업체인 다우메탈의 공장에서 나온 폐수였다”고 설명했다. 폐수에는 암모니아 성분이 들어 있는데 선경워텍은 이 암모니아 가스를 뽑아내 인과 반응시켜 NP시리즈를 만든다. 이 제품은 하수처리용 미생물의 영양제로, 태광석유화학 등 다른 공장들의 하수처리 제품으로 팔린다.
○ 폐수를 보물로… ‘그린 아나바다’
선경워텍은 상품의 원료가 되는 폐수를 다우메탈과 같은 폐수 배출업체에서 t당 약 7만 원씩 돈을 받고 가져온다. 여기에다 NP시리즈 판매로 버는 돈만 월 9000만 원. 직원이 38명에 불과한 이 회사에는 적지 않은 금액이다. 사업 초기인 2007년에 비해 매출액이 2배가량 뛰었다.
이 회사가 단기간에 고속성장을 한 비결은 가격경쟁력이다. 최동언 사장은 “경쟁업체들은 원료를 외국에서 사오지만 우리는 폐수를 재활용해 영양제를 만들기 때문에 제품 가격이 30%가량 싼 편”이라고 말했다. 다우메탈로서도 일반적인 폐수처리를 하기보다 선경워텍에 폐수를 넘기는 편이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에 서로 ‘윈윈’하는 셈이다.
▼전국 공단 ‘생태산업단지’로 리모델링 추진▼
폐기물 소각업체 한솔EME는 산업폐기물 소각 과정에서 공중에 흘려보냈던 중압 폐열을 모아 코리아PTG에 팔고 있다. 코리아PTG는 섬유원료 생산을 위해 다양한 스팀이 필요한데 고압 스팀만 만들 수 있기 때문. 이 사정을 알게 된 화학제품 제조사 KP케미칼도 저압 폐열을 팔아 수익이 짭짤하다. 종전에 따로 돈 들여 고압 스팀을 중저압으로 낮춰야 했던 코리아PTG는 남은 고압 폐열을 오히려 SKC에 팔아 수익도 남겼다. 세 회사가 ‘폐열 아나바다’ 판매로 올린 연간 수익은 42억 원.
포항에서는 ‘철가루 쓰레기 아나바다’로 쏠쏠한 수입을 올린다. 전기로 제철회사에서 나오는 철가루 쓰레기에 화학약품을 넣어 용광로 제철회사가 쓰기 좋은 원료로 만드는 것. 원료 매출은 연간 33억 원에 이른다.
○ 정부, 전국 공단 리모델링 나선다
‘수출 한국’의 주역이었던 산업단지들이 이처럼 생태단지, 지식산업단지 등으로 환골탈태하고 있다. 전국 40여개의 산업단지는 대부분 1960, 70년대에 들어선 것이어서 선진화된 산업구조를 담아내는 ‘그릇’으로는 수명이 다했다.
그 리모델링 모델의 하나가 이른바 ‘한국형 생태산업단지’인 셈이다. 현재 아나바다가 활성화된 ‘생태산업단지’는 울산 포항 여수 반월·시화 청주 등 전국적으로 5개다.
전문가들은 한국형 생태산업단지의 미래가 밝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의 산업단지들은 외국에 비해 집약도가 높은 데다 국토도 좁아 서로 네트워크를 이루기 쉽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단지 내 아나바다를 넘어 울산산단과 포항산단 간의 아나바다도 검토되고 있다. 정부는 산업단지들의 변신을 활성화하기 위해 △폐기물 재활용 전문업체의 산업단지 입주를 허용하고 △제조업과 시너지가 큰 경영컨설팅, 직업교육, 시험분석, 출판, 애니메이션, 포장 등 6가지 지식서비스산업도 산업단지에 입주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울산=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