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시스템 깰수록 조직 활성화
한국 단행본 시장 1위 급부상
한해 새 책만 무려 570권 발간
“조직의 10%는 미래 먹을거리를 찾아 공부를 해야 하죠. 기존 사업조직 안에서는 낼 수 없는 아이디어와 새로운 사업 영역을 제시하는 것이 이노오션의 미션입니다.”
지난달 중순 경기 파주시 교하읍 파주출판단지 웅진씽크빅 본사에서 만난 최봉수 대표이사 전무(48·사진)는 웅진씽크빅의 혁신업무 전담팀인 ‘이노오션’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호탕한 부산 사투리로 “직원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1년간 회사에서 꿈을 꾸고 모험하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최 대표는 김영사 등 국내 유수의 출판사에서 베스트셀러를 쏟아낸 미다스의 손이다. 웅진씽크빅에 2005년 전격 스카우트된 최 대표는 단행본 출판시장에서는 상위 10위권 밖에 머물던 웅진씽크빅을 2년 만에 1위로 끌어올렸다. 지난해 말 그는 단행본부문 대표에서 웅진씽크빅의 모태(母胎)가 된 교육사업부문까지 아우르는 총괄 대표로 승진했다.
○ 1년간 오로지 꿈과 모험만 생각하라
최 대표는 대표에 취임하자마자 혁신업무를 전담할 ‘이노오션’팀을 만들었다. 혁신을 뜻하는 영어 단어 ‘이노베이션(Innovation)’에 새로운 시장을 의미하는 ‘블루오션’을 합쳐 팀 이름을 지었다. 불필요한 사업부를 정리하면서 생긴 유휴인력에다 각 팀에서 추가로 인력을 빼내 본사 임직원 수의 10%에 해당하는 50여 명으로 팀을 구성했다. 사실 웅진씽크빅은 그룹 내에서 혁신 마인드가 가장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전통 있고, 시스템이 안정돼 있는 조직일수록 혁신을 외면하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게 최 대표의 분석. 이노오션은 조직의 안이함을 깨기 위해 내린 일종의 극약 처방이었던 셈이다.
“총괄 대표로 취임할 줄 모르고 단행본부문 대표로 있을 때 조직에 혁신만 전담하는 부서를 도입하려고 했어요. 기존 사업 담당자는 매출이 떨어질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시장에 도전할 생각을 안 하겠죠. 하지만 이노오션팀은 현업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자유롭게 생각하고 모험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직원들은 웅성거렸다. 구조조정 신호탄이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왔다. 이노오션팀에 ‘차출’된 직원 가운데 마음의 준비를 한 이도 여럿 있었다.
“이노오션팀 발대식 때 ‘혁신’에 대한 제 생각을 밝혔죠. 이노오션팀에 있는 1년간 최고의 교육을 받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했어요. 실패를 해도 좋으니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라며 직원들에게 술잔을 건넸죠. 그제야 진심이 통했는지 일부 직원은 울먹이면서 그날 품고 나온 사직서를 저한테 보여주더군요.”
최 대표는 이노오션팀에 대한 교육비 지원을 다른 부서보다 3배로 늘렸다. 이노오션팀 사무공간도 대표 집무실 옆으로 옮겼다. 이노오션 팀원들이 수시로 대표 집무실을 들락날락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자 직원들 사이에서 이노오션팀이 ‘최 대표 친위대가 된 것 아니냐’는 농담까지 나왔다.
하지만 최 대표는 1분기(1∼3월) 말 이노오션팀 프로젝트 평가회에서 누구보다 매서웠다. 당시 평가회에서 ‘OK’ 사인을 받은 팀은 몇 곳 없었다. 그는 “팀원들한테 ‘이렇게 해서는 연말에 돌아갈 부서가 없을 수도 있다’며 엄포를 놨다”고 말했다.
출범 이후 6월 말 현재까지 모두 23개 프로젝트를 수행 중인 이노오션팀은 팀원들이 각자 도출해낸 혁신 과제를 수행하는 일종의 컨설팅 조직이다. 프로젝트에 따라 과장이 차장을 팀원으로 고용해 일할 수 있도록 서열을 파괴했다.
○ 출판인에서 교육기업 CEO로 변신 중
아직 팀을 꾸린 지 반년밖에 안 지났지만 최 대표의 ‘실험’은 업종을 불문하고 국내 유수의 대기업에서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고 있다. 최 대표는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기업들이 갑자기 유휴인력이 된 인재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고민이 크다”며 “혁신이라는 과제를 떠안은 별동대 조직이 신수종사업 찾기에 골몰한 국내 기업에 새로운 인사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웅진씽크빅은 앞으로 3년간 본사 직원 600여 명이 이노오션팀을 한 번씩은 거쳐가게 할 계획이다.
사실 최 대표 스스로도 혁신이라는 과제를 24시간 내내 머릿속에서 지우지 않는다. 대표적인 혁신 사례가 단행본부문 대표로 재직하던 시절 도입한 ‘임프린트’ 제도다. 편집자별로 각기 다른 전문 출판 브랜드를 갖는 임프린트 제도는 사장 1인 체제로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던 당시 국내 출판업계에서는 이례적인 시도였다. 최 대표는 당시 12개였던 내부조직을 25개로 늘려 베스트셀러 경쟁을 벌이도록 유도했다. 웅진씽크빅에서만 한 해 무려 570권의 신간이 쏟아져 나오는 비결이었다.
“독자들의 니즈는 갈수록 다양해집니다. 장르만이 아니라 취향도 더욱 세분되겠죠. 브랜드 하나만으로 독자의 입맛에 맞출 수는 없어요. 동화책을 내다 느닷없이 영어책이나 컴퓨터책을 낼 수는 없다는 겁니다.”
인터뷰 말미에 그의 집무실 벽 2개 면을 가득 메운 서고로 문득 눈길이 갔다. 갑자기 국문학도, 학생운동가, 출판인 등 그의 이력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가 요즘 읽는 책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책 만들 때야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만 읽었죠. 요즘은 경영서적도 자주 봅니다만 ‘넛지’, ‘이기적 유전자’, ‘신’ 등이 인상 깊었습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최봉수 대표이사 프로필
-1988년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2년 김영사 편집장
-2003년 중앙M&B 전략기획실장
-2005년 웅진씽크빅 상무
-2008년 웅진씽크빅 대표이사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