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은 서민들이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것은 계속 규제하지 않기로 했다. 집값이 오른다고 해서 엉뚱하게 서민들이 피해를 보는 것을 막고 경기회복에도 찬물을 끼얹지 않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서울 강남권 등 일부 지역의 집값 오름세가 심상치 않은 점을 감안해 집값이 급등하거나 주택담보대출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는 지역에 대해 자금줄을 조이도록 은행들을 독려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고위 관계자는 5일 “주택담보대출을 일괄적으로 규제하면 미분양이 많은 지방이나 서민들에게 미칠 영향이 크다”며 “집값 상승률이 전국 평균치를 크게 웃돌거나 대출 신청이 집중돼 가격이 크게 오를 것으로 우려되는 지역에 한해 규제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 강남 서초 송파구 등 강남 3구뿐 아니라 경기 용인시와 과천시 등 지난해 11월 투기지역에서 해제된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집값이 들썩이고 이에 비례해 주택 구입 목적의 대출이 급증하자 선별적으로 자금줄을 죄겠다는 뜻이다. 금융계에선 규제 예상지역으로 서울 양천구 목동, 경기 성남시 분당신도시, 과천시 등을 거론하고 있지만 아직 대상이 확정되진 않았다.
금융당국은 수요가 몰려 집값이 급등한 지역을 먼저 추린 뒤 이들 지역에 대해 투기지역 지정 여부와 관계없이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대출 취급액을 제한하도록 지도할 계획이다. 대출이 제한되는 지역에서 영업 중인 은행들에 대해 자율적으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낮추거나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적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현재 서울 강남 3구를 제외한 수도권 전 지역이 투기지역에서 해제된 뒤 대부분의 지역이 DTI 적용을 받지 않고 있으며(강남 3구는 40%), LTV도 금융회사에 따라 60∼80%의 비율로 느슨하게 적용돼 왔다. 하지만 앞으로 정부가 LTV를 40%로 강화하고 DTI 규제를 비(非)투기지역에도 적용하면 주택담보대출을 받기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연 소득이 5000만 원인 사람이 서울 마포구의 6억5000만 원짜리 아파트를 사면서 ‘연리 5%, 10년 만기 원리금 균등분할상환’ 조건으로 대출을 신청할 경우 대출 한도가 지금의 3억9000만 원에서 1억5600만 원으로 줄어든다.
당국은 대출 규제가 강화돼도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한 주택담보대출은 현행 체계대로 유지할 방침이다. 투기 수요를 잡기 위해 고강도 규제에 나섰다가 불황으로 생계비 마련이 힘든 서민들이 예기치 않은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주택담보대출의 절반가량은 서민과 자영업자들이 생활자금 및 운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기 집을 담보로 빌린 자금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의 목적을 잘 가려 은행이 투기 수요와 관계없는 서민 대출까지 억제하지는 않도록 권고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아직 DTI와 LTV 규제를 일률적으로 강화해 전 지역에 적용할 단계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 당국의 한 관계자는 “집값 급등 지역이 확산되고 창구 지도만으로 한계가 있다고 판단되면 규제를 좀 더 강화할 수도 있지만 경기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가격 폭락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전면 규제를 도입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