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저축률 내년 OECD 꼴찌 추락”

  • 입력 2009년 7월 6일 02시 57분


■ OECD 세계경제 전망

日과 같은 3.2%… 부동산-교육비 증가가 원인
투자-소비여력 감소→경기침체 악순환 우려

“지구촌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높은 저축열에 힘입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매년 ‘저축의 날’ 행사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금융당국 수장의 기념사 내용이다.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은 “다소 진부한 얘기이긴 하지만 좁은 국토에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가 지금처럼 발돋움할 수 있었던 데는 높은 저축률이 크게 기여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흘러간 이야기가 되고 있다. 1988년에 저축률 세계 1위국으로 올라선 뒤 10여 년간 선두권을 고수했던 한국이 내년에는 주요국 가운데 꼴찌로 떨어질 것이 확실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1위의 저축 강국에서 ‘국민이 저축을 가장 안 하는 나라’로 전락할 처지가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세계 최저의 저축률이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여는 데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5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놓은 세계 경제전망보고서에 따르면 OECD의 30개 회원국 중 비교가 가능한 17개국 가운데 내년 한국의 가계저축률(저축액/가처분소득)은 3.2%로 일본과 함께 최하위로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17개국 평균인 8.5%보다 5.3%포인트나 낮은 수치다. 1위는 16.3%로 예측된 스웨덴이다.

올해 한국의 가계저축률 전망치 역시 5.1%로 일본(3.3%) 노르웨이(4.6%) 덴마크(5.0%) 등에 이어 저축률이 낮은 국가로 분류됐다. 한국의 가계저축률은 1975년 7.9%에서 꾸준히 증가해 서울 올림픽이 열린 1988년엔 25.2%로 세계 최고의 저축 강국으로 부상했다. 이후 외환위기 때인 1998년까지만 해도 24.9%로 OECD 1위를 지켰으나 2000년 이후 급락하는 추세다.

현대경제연구원은 5일 ‘개인순저축률(가계저축률) 급락의 파장’ 보고서에서 “저축률이 외환위기를 정점으로 급락해 지난해 말에는 2.54%까지 떨어졌다”며 “외국과 비교할 때 지나치게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저축률이 곤두박질친 것은 소득은 크게 늘지 않았는데 소비증가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기 때문.

기획재정부 당국자는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가격이 급등하면서 빚을 내서 집을 사는 가구가 늘어 가계대출이 많아졌고 사교육 열풍이 지속되면서 교육비 지출 등 고정비용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적자 가구’가 늘어 저축할 여력이 그만큼 줄었다는 분석이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경기악화와 소득 양극화 외에도 청년실업과 조기퇴직 때문에 소득이 생기는 기간이 줄고 연금과 보험 등 비(非)소비지출이 늘어난 것도 저축 여력이 축소된 원인”이라고 말했다.

저축률 급락은 장기적으로 국민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현상이다. 통상 저축이 늘면 투자와 수출이 증가해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고리가 형성되지만 한국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생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은 최근 내놓은 ‘개인저축률과 거시경제변수 간 관계분석’ 보고서에서 “저축률이 낮은 수준에 머물면 미래의 투자 및 소비 여력을 감소시켜 내수 회복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저축률이 낮아지는 것과는 달리 미국의 저축률은 지난해 1.8%에서 올해 5.4%, 2010년 6.5%로 올라갈 것으로 전망된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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