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생존경쟁의 현장…기업인 되고나서야 실감”

  • 입력 2009년 7월 21일 02시 57분


STX에너지 회장 4개월 된 이희범 前산자부장관

“기업에 와 보니 공직에 있을 때 ‘을(乙·기업)’의 세계를 이해했더라면 더 잘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공직에 있는 후배들을 만나면 ‘현장’과 소통하라는 조언을 하곤 합니다. 현장에 정책이 있는 셈이지요.”

이희범 STX에너지 회장(60·사진)의 소회에서는 오랜 공직생활의 경험이 우러나왔다. 장관(산업자원부)에서 경제단체장(무역협회장)을 거쳐 기업인으로 변신한 그의 행보는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사례로 꼽힌다. 공무원에서 기업인으로 자리를 바꿔 성공한 사례는 제법 있지만 대부분 ‘중견 이하’의 직급에서 옮긴 뒤 기업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경우다.

그가 STX그룹의 에너지 부문 총괄회장으로 취임한 날이 3월 26일. 한때 산업 행정의 수장이었던 그는 기업 현장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16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STX에너지 회장실에서 취임 4개월이 되어가는 그를 만났다.

○ 후배들이 어떻게 볼까 걱정했지만…

그는 공무원을 ‘갑(甲)’, 기업을 ‘을’로 표현하며 스스로를 “갑도 을도 다 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고위공직자가 기업에서 성공한 사례가 많지 않은 이유에 대해 “아마도 과거를 쉽게 잊지 못해서일 것”이라고 했다. 이어 “차관에서 물러나고부터 ‘기업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던 나도 기업으로 옮기기 전 ‘후배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라고 생각했으니 알 만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아직도 무슨 행사가 있으면 먼저 헤드테이블로 향하는 것이 습관”이라고 털어놨다.

‘입사 4개월차’인 이 회장이 바라본 기업의 세계는 ‘치열함’ 그 자체였다. 하루하루가 생존 경쟁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산업 분야 장관까지 지낸 사람으로서 기업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며 “오히려 회의를 하다 보면 용어부터 생소한 경우가 많아 당황스러웠다”면서 처음 접한 기업 현장의 느낌을 전했다.

“정책은 산업을 넓게 바라봐야 합니다. 그런데 기업에 와보니 넓은 것보다 깊게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하더군요. 게다가 정책의 평가는 계량화되는 것이 아니지요. 하지만 기업에서는 실적이 숫자로 나타나니까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어요. 살아남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 해외 자원 확보 위해 ‘인적 외교’ 절실

이 회장은 “나도 드디어 경쟁에 들어섰다”며 웃었다. 그는 “무역협회장 시절에도 기업인들에게 받은 질문 대부분이 ‘환율이 어떻게 되겠느냐’ 같은 현안이었다”며 “당시는 거시적이고 추상적인 대답만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기업에 필요한 말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공직에 있을 때 기업인을 이해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STX그룹의 ‘녹색 성장’을 포함한 에너지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실제로 이 회장 취임 이후 STX그룹은 활발한 에너지 사업을 벌이고 있다. 특히 해외 석유 사업과 태양광발전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 회장은 자원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자원 외교’와 함께 민간이 참여하는 ‘인적 외교’를 제안했다. 자원을 가진 국가의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할 인적 자원을 많이 파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유럽 국가들은 이미 아프리카의 정부나 에너지 기업에 관여할 만한 민간인이 많이 있다”며 “예를 들어 프랑스 자원기업인 아레바의 사장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자문관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남아공 국영 전력회사 에스콤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이 회장 케이스도 같은 범주에 속한다.

요즘 경제 정책에 대해 기업인으로서 평가를 해달라고 하자 이 회장은 “내가 얼마 전까지 그쪽에 있던 사람인데 어떻게…”라며 말을 아꼈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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