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전략’ 솔솔… 언제 나설까

  • 입력 2009년 7월 23일 03시 16분


각국 중앙은행들이 적절한 타이밍에 통화량을 흡수하는 ‘출구전략’의 실행시기를 고민하고 있다. 21일(현지 시간) 뉴욕증권거래소의 트레이더들이 TV를 통해 중계되는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의 국회 발언을 듣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각국 중앙은행들이 적절한 타이밍에 통화량을 흡수하는 ‘출구전략’의 실행시기를 고민하고 있다. 21일(현지 시간) 뉴욕증권거래소의 트레이더들이 TV를 통해 중계되는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의 국회 발언을 듣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 중앙은행들 유동성 흡수 고민
“필요하지만 지금 당장은…” 버냉키 의장 시기 저울질
한은, 경기회복 빠르면 연내 금리 올릴 가능성

‘출구전략(Exit Strategy)’이라는 유령이 국제 금융시장을 떠돌고 있다. 한동안 소강상태에 빠졌던 출구전략 논의가 최근 국제 금융시장에서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해 9월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시중에 과다하게 풀린 통화량이 ‘초(超) 인플레이션’ 등 부작용을 불러오기 전에 통화 및 재정정책을 정상화하기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것.

특히 최근 들어 글로벌 기업들의 2분기 실적이 예상보다 좋게 나오고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한국 및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과연 언제쯤 본격적인 ‘출구전략’에 들어갈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 다시 불붙은 출구전략 논의

국제적으로 출구전략 논의에 불을 붙인 주인공은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다. 버냉키 의장은 20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FRB의 출구전략’이라는 기고문에서 FRB는 필요할 때 기준금리 및 지급준비금에 대한 금리를 인상하는 등 유동성 흡수 정책을 펼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버냉키 의장은 21일 미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에 출석해서는 “미국 경제가 주목할 만큼 좋아지고 있고 전망도 밝아졌다”면서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완화적인 통화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앞으로 상당 기간 적절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으로는 출구전략의 필요성을 흘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 당장은 출구전략을 쓸 때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21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출구전략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KDI는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가 다수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빠르게 회복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위기 이후 정책방향을 먼저 고민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며 재정확대 정책 및 저금리 통화정책 등 각종 위기 대응 정책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한은, 연내에 금리 올릴까

현재 한국 및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금리를 올려 시중의 유동성을 본격적으로 흡수하는 ‘출구전략’에 들어갈 단계는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경기가 하강세에서 벗어나고는 있지만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기 때문에 출구전략을 본격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주장도 많다.

그럼에도 출구전략 논의가 꾸준히 나오고 있는 것은 중앙은행이 경기와 물가에 대한 인식을 보여줘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을 낮추는 신호를 줘야 한다는 시장의 요구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지금 당장 통화정책을 긴축으로 바꿀 수는 없지만 회복신호만 확실해지면 언제든지 방향을 틀 수 있다는 확신을 줘 시장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불안을 달래줘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 경제의 2분기 성장률이 전기 대비 2.3%로 잠정 집계되는 등 급격한 회복세를 보이면서 한국은행이 금리를 미국보다 빨리 올릴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상당수 전문가는 3분기 실적이 나오는 10월 말∼11월 초가 출구전략 시점을 가늠하는 고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 내부에서도 얼마 전까지는 ‘올해 안에 금리를 올리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대세였으나 최근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3분기의 경기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다면 연내에도 금리를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태 한은 총재도 지금의 과도하게 낮은 금리 수준에 대해 불편해하고 있으며 경기회복 신호만 확실해지면 임기(2010년 4월) 전에 출구전략을 실행하고 떠나고 싶다는 의견을 간부들에게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재는 공식적으로는 “출구전략을 거론할 시점이 아직 아니다”라고 말하면서도 ‘부동산 가격 급등’에 대해서는 거듭 경고하고 있다. 출구전략이 필요하다는 속내를 비치고 있는 것이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통화정책은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6개월 정도 시차가 있기 때문에 출구전략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며 “하지만 섣불리 통화정책을 긴축으로 바꿨다가는 가까스로 살아나는 경기 불씨를 완전히 꺼뜨릴 수 있기 때문에 무척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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