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정보기술(IT) 기업인 미국 퀄컴사가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한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사상 최대 규모의 과징금(약 2600억 원)을 부과 받았다.
23일 공정위에 따르면 퀄컴은 삼성전자 LG전자 등 한국 휴대전화 제조업체가 퀄컴의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모뎀칩이 아닌 경쟁사 제품을 쓸 때 수출용 휴대전화 판매가에 매기는 로열티를 자사 제품 사용 때(5%)보다 높은 5.75%를 부과했다. 퀄컴은 휴대전화의 핵심기술인 CDMA 원천기술을 보유한 점을 이용해 이 기술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국내 휴대전화 제조업체를 상대로 이런 내용의 독점적 지위를 행사했다고 공정위는 밝혔다.
퀄컴은 또 한국 기업이 자사 모뎀칩을 구매하는 조건으로 거액의 리베이트를 제공했다. 실제 A사가 자체 생산에 필요한 모뎀칩의 85% 이상을 구매하면 구매액의 3%를 이 회사에 지급했다. 리베이트 규모는 2004년까지는 업체당 연평균 1680만 달러(약 210억 원), 이후에는 3280만 달러(약 410억 원)였다. 모뎀칩은 사람의 음성을 디지털 신호로 바꾸고 이를 다시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아날로그 신호로 변조하는 휴대전화의 핵심 부품이다.
특히 퀄컴은 앞으로 CDMA 특허권이 소멸되더라도 기존 로열티의 50%를 내도록 계약을 맺어 국내 업체들의 기술료 부담을 늘렸다고 공정위는 덧붙였다. 공정위는 과징금 부과와 함께 △차별적 로열티 부과 △리베이트 지급 △특허기간 종료 후 특허료 징수 등 3가지 불공정행위를 즉각 시정할 것을 명령했다.
서동원 공정위 부위원장은 “퀄컴이 로열티를 차별 부과하고 조건부로 리베이트를 지급하면서 한국과 대만 기업들이 국내 모뎀칩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게 했다”며 “그 결과 퀄컴은 10년 이상 독점에 가까운 시장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퀄컴은 지난해 기준 국내 CDMA 모뎀칩 시장의 99.4%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퀄컴 차영구 사장은 “앞으로 공식 발표될 공정위의 최종 의결서 내용이 오늘 발표한 것과 달라지지 않는다면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