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간판기업들 ‘깜짝 실적’ 왜?

  • 입력 2009년 7월 24일 18시 52분


세계 시장에서 팔리는 TV와 휴대전화는 3대 중 1대가 한국산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TV는 나란히 1, 2위를 차지해 세계 시장의 32.6%를 점유했다. 이들 기업의 휴대전화 점유율합계도 30%를 돌파했다. 현대자동차는 메이저와 마이너의 경계선인 세계시장 점유율 5%를 돌파했다. 이는 세계경제가 침체의 늪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2분기(4~6월)에 일궈낸 실적들이다.

한국 간판기업들의 '깜작실적(어닝 서프라이즈)'이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2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고 24일 발표했다. 특히 디지털미디어 부문 영업이익은 1조600억 원으로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 원을 돌파했다.

이에 앞서 LG전자도 2분기 사상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 원을 돌파했고, 현대자동차는 2분기 당기순이익 사상 최대치를 나타냈다고 발표했다. 노키아(휴대전화) 인텔(반도체) 소니(TV) 도요타(자동차) 등 해외 주요 기업들의 2분기 실적이 악화된 것과 대조적인 모습니다.

한국 기업들이 경제전문가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좋은 성적표'를 받은 원동력은 무엇일까.

●환율 효과?

일각에서는 원화약세 덕분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환율효과로는 2분기 실적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분기 원-달러 환율은 평균 1285.4원. 지난해 4분기(1362.5원)에 비하면 원화가 강세를 보였는데도 기업들의 영업이익은 치솟았다. 정도현 LG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부사장)도 "2분기 실적에 환율 효과(달러화 대비 원화약세)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해답의 실마리는 일본 엔화와 비교하면 찾을 수 있다. 2분기 엔-달러 환율은 97.4엔으로 원화에 비해 여전히 강세를 보였다. 한국 기업의 주요 경쟁사인 소니나 도요타가 엔고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을 때 한국 기업은 해외시장에서 훨씬 싼 가격에 제품을 팔 수 있었다.

다만 실적 중 일부에는 고환율에 따른 '착시현상'이 포함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의 원화 표시 실적이 최대치여도, 이를 달러화로 표시하면 실적이 축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LG전자의 가전사업을 담당하는 홈어플라이언스(HA) 사업본부는 원화 표시 매출은 10% 늘었지만 달러 기준 매출은 전년 동기대비 14% 감소했다.

●구조조정 안하고 마케팅 비용 깎았는데도 실적 호조?

외환위기 때와 달리 간판 기업들은 인력 구조조정을 최대한 자제하고, 판매에 영향을 미치는 마케팅 비용을 대폭 깎았다. 그런데도 글로벌 시장에서 점유율을 오히려 높였다. LG전자가 올해 절감하겠다고 한 비용 3조 원 중 1조5000억 원이 마케팅 비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도 임원을 10% 줄이는 등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갔다.

이는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좋아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김종석 홍익대(경영학) 교수는 "국내 기업들은 LED TV 출시와 40나노급 D램 양산 등 혁신적인 제품 개발로 한국 경제 기초 체력을 튼튼하게 했다"고 말했다. 여기에 외환위기를 거치며 재무 구조 건전화 등을 통해 투자 여력을 확보한 것도 실적 호조에 한몫했다. 이런 덕분에 국내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은 2분기 10% 안팎에 이르렀다.

그러나 향후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 '화려한 실적'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성준 SK증권 애널리스트는 "LG전자는 지난해 판매관리비가 11조 원이 들었는데 올해 3조 원 줄이기로 했다"면서 "영업이익을 3조 원 더 벌어들이는 것과 똑같은 효과이지만 이런 효과는 장기적으로 이어질 수 없다"고 말했다.

●깜짝 실적 이어질까

2분기에 이어 3분기에도 깜짝 실적이 계속될지 여부가 관심이다. 이에 대해 나준호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최근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심리로 앞으로 수요가 늘 것에 대비해 각국 유통업체들이 제품을 사들이면서 국내 업체 매출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지금은 세계 시장에서 상위에 오를 수 있는 호기(好機)"라며 "해외 마케팅을 늘리고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며 기업인수 합병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전략을 펼쳐야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샴페인을 터뜨리기엔 이르다는 지적도 많다. 송재형 서울대(경영학) 교수는 "무역수지 및 경상수지 흑자로 한국 기업을 떠받쳤던 원화 가치 하락이 더 이상 이어지기 힘들 수도 있고, 더욱이 하반기는 성수기로 마케팅 비용이 많아진다"고 설명했다.

김유영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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