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 오르면 보수정당의 득표율이 높아진다’는 속설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것일까. 동아일보와 박원호 교수(미국 플로리다대 정치학)는 2000년 총선부터 2008년 총선까지 7차례의 전국 단위 선거를 분석해 이 속설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확인했다.
집값이 오르면 보수 성향의 유권자가 집값 상승 지역으로 유입되는 것은 물론이고 기존 거주자들도 보수화돼 ‘표심의 보수화’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선거가 다양한 변수에 의해 영향을 받지만 집값도 주요 변수 중 하나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 집값 오른 곳에서 한나라당 득표율도 올랐다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호남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보다 많은 표를 얻었다. 당시 선거 결과를 2002년 대선과 비교해 보면 이 후보는 아파트 값이 상대적으로 더 오른 곳에서 2002년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보다 많은 표를 얻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3.3m²당 아파트 평균가가 100만 원 미만 오르는 데 그친 지역(읍면동)에서는 이명박 후보의 득표율이 4.2%포인트 떨어졌지만 300만 원 이상 오른 지역에서는 6%포인트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100만∼300만 원 상승 지역에서는 0.7%포인트 상승했다. 유권자가 많은 서울 등 대도시에서는 대부분 지역이 300만 원 이상 올랐기 때문에 ‘집값 변화가 이 후보에 유리하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반면 민주당 정 후보는 아파트 가격이 많이 오른 지역에서 2002년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받은 표보다 적게 받았다. 100만 원 미만 오른 지역에서 정 후보의 득표율은 17.6%포인트 떨어졌지만 300만 원 이상 오른 지역에서는 득표율이 25.2%포인트나 낮아졌다. 100만∼300만 원 상승 지역에서는 23.4%포인트 하락했다.
17, 18대 총선과 3, 4회 지방선거에서도 지역별 한나라당 후보의 득표율은 아파트 가격과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 서울 경기에서 상관관계 높아
분석 결과에 따르면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에서 집값 상승이 지역 표심의 보수화로 이어지는 경향이 강했다.
16, 17대 대선을 비교할 때 서울 강남구 개포동 아파트의 3.3m²당 평균가가 2402만 원 오른 가운데 한나라당의 득표율이 8.1%포인트 상승했고 민주당 득표율은 25.6%포인트 떨어졌다. 강남구의 압구정동과 도곡, 삼성, 역삼동 등은 집값이 2000만 원 안팎에서 한나라당 득표율이 6∼10%포인트 올랐다. 종로구 평창동은 이 기간 중 집값이 평균 197만 원밖에 안 올랐지만 17대 대선 득표율은 63%로 높아 집값 변화에 관계없이 보수 표심이 강한 곳으로 분류됐다.
경기도에서는 과천시 갈현동의 집값이 평균 2445만 원 오른 가운데 한나라당의 득표율이 11.6%포인트 상승했다. 성남시 분당구와 용인시 죽전동, 안양시 평촌동 등 신도시에서도 집값이 평균 1000만 원 안팎으로 오르면서 한나라당 득표율이 4∼10%포인트 올랐다.
17, 18대 총선에서도 이와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특히 강북 지역에서 700만 원 안팎이 오른 성북, 강북, 노원구 등에선 한나라당 후보의 득표율이 많이 올라 결과적으로 한나라당 후보들이 대거 당선됐다. 2000년 이후 고가 아파트가 집중적으로 지어지면서 개발붐이 일었던 용산구 한강로동은 집값이 평균 1612만 원 올랐고 한나라당 후보 득표율도 14.5%포인트나 상승했다. 반면 민주당 득표율은 19%포인트 빠졌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 7차례 선거 읍면동 평균득표율
재·보궐선거를 제외하고 2000∼2008년에 치러진 7번의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평균득표율이 가장 높았던 곳은 2700개 읍면동 중 경북 포항시 대보면(77.8%)이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71.7%)이 상위 7위에 오른 것을 제외하면 상위 10곳 중 9곳이 경북 지역에 몰려 있었다. 민주당의 평균득표율은 전남 담양군 봉산면(89.1%)이 가장 높았으며, 상위 10위가 모두 전남 지역에 집중됐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주요 지지 기반인 영남과 호남을 각각 제외하면 평균득표율의 순위는 다소 다른 양상을 보였다. 한나라당은 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높았던 서울 강남 서초 송파구 등 이른바 강남 3구에서 강세를 띤 반면 민주당은 강남 3구를 제외한 서울시내 다른 구들과 강원 제주 충남 등 지방에서 득표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한나라당은 압구정동을 포함해 서울 송파구 오륜동, 경기 양평군 개군면, 경기 파주시 진동면, 서울 강남구 도곡동 대치동 신사동 청담동,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서울 서초구 잠원동 등에서 평균득표율이 높았다. 상위 10위 중 절반이 넘는 6곳이 이른바 강남 3구였다. 특히 강남구 개포동 압구정동 대치동 도곡동은 아파트 평균가격(3.3m²당)이 서울에서 가장 높은 상위 1∼4위를 차지하는 고가 아파트 밀집 지역이다. 압구정동은 2007년 대선 때 한나라당에 71.7%의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 영남을 제외하면 한나라당의 전국 1위 득표 지역이었다. 오륜동은 2007년 대선 때와 2008년 총선 때 한나라당의 득표율이 서울에서 3위를 각각 차지했다. 개군면은 2008년 총선 때 경기 지역 1위, 진동면은 2007년 대선 때 경기 지역 3위, 경기 용인시 성복동은 2007년 대선 때 경기 지역 1위였던 곳이다.
민주당은 강원 양구면 해안면, 제주 서귀포시 효돈동, 서울 광진구 노유동, 충남 천안시 신용동, 제주 북제주군 추자면, 경기 안산시 이동, 서울 종로구 창신동 등에서 평균득표율이 높았다. 상위 10위 중 서울 지역은 노유동과 창신동 2곳에 불과했다. 상위 15위로 범위를 넓힐 경우 뉴타운 개발 예정지로 거론되는 송파구 마천동이 강남 3구 지역에선 유일하게 포함됐다. 아파트 3.3m²당 평균가격이 서울에서 가장 낮은 구로구 가리봉동은 2008년 총선 때 서울에서 두 번째로 한나라당의 득표율이 낮았다. 가리봉동은 2000∼2008년 선거 때 민주당의 평균득표율이 50%인 반면 한나라당은 36%에 불과했다. 창신동은 2007년 대선 때 한나라당 후보 득표율이 47.4%에 그쳤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