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인물중심 한국선거에 경제투표 흔적 확인”

  • 입력 2009년 8월 3일 02시 55분


■ 자료분석 박원호 교수 기고

1960년대에 출간된 미국 선거 연구의 바이블 ‘미국의 유권자(The American Voter)’는 정당 일체감, 인물, 정책 등 세 가지 요인이 유권자의 투표 결과에 변수가 된다고 규정했다. 이 중 인물과 정당 일체감은 투표 행위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지만 정책은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선거는 정책투표 중에서도 경제 상황과 각 당의 경제정책을 놓고 투표하는 ‘경제투표(economic voting)’에 의해 주도돼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가 유권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아이디어는 일견 당연하고 단순하지만 미국에서는 경제투표 현상이 드러나는 과정이 정교하게 분석돼 왔다. 미국의 유권자들은 각자의 개인적 경제 상황에 따른 투표(pocketbook voting)뿐 아니라 국가적인 경제 상황까지 고려한 투표(sociotropic voting)를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후자가 선거 결과를 결정짓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 임기에서의 경제적 성과에 대한 평가를 통해 집권당을 보상하거나 처벌(retrospective voting)하기도 한다. 동시에 각 당의 정책과 결부된 미래의 전망을 놓고 투표(prospective voting)하는 경향도 강해지고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선거 구호가 ‘경제가 문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였고,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대선 승리가 미국 경제의 침체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도 미국의 경제투표 현상의 흐름을 반영한다.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책임 있는 정당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한국의 유권자들도 각 정당의 정책을 꼼꼼히 살펴 투표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미 새로운 게 아니다. 다만 정책투표의 핵심은 경제투표이며, 유권자들이 가장 쉽게 체감할 수 있고 접근할 수 있는 분야도 경제 분야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동아일보와 필자는 이번 분석을 위해 2000년 이후 7차례 실시된 전국 단위 선거의 투표 데이터와 아파트 값을 2700개 읍면동 단위로 분석했다. 선거구나 시군구 단위의 연구에 비해 훨씬 구체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단일 시군구 안에서도 동별로 아파트 가격의 편차가 크기 때문에 분석의 오차를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번 분석의 의의는 지역주의와 인물에 대한 고려가 지배하는 한국 선거의 기저에도 희미하게나마 일정한 경제투표의 흔적이 보인다는 사실을 확인한 데 있다. 정당들이 지역주의에 의존하지 않고 명확한 비전을 담은 경제정책으로 유권자에게 접근한다면 책임정당 정치의 구현을 앞당길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 플로리다대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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