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생산 재개해도
살아나기 어려운데…”
채권단 ‘포기’ 가능성
파산땐 2만 명 실직
지역경제에 찬물
쌍용자동차 노사가 극한 대치상황에서 벌인 약 68시간의 벼랑 끝 교섭이 2일 결렬됨에 따라 쌍용차의 파산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게 됐다. 당장 생산을 재개해도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날 결렬 선언으로 쌍용차는 사실상 파산 수순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회사 측에선 이날 기자회견에서 청산 가능성을 처음 거론했다. 쌍용차가 파산할 경우 지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하겠지만, 적은 생산규모 등에 비춰볼 때 전체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예상이다.
쌍용차를 살릴지 청산시킬지 결정은 9월 15일 열리는 2차 관계인집회에서 내려지게 된다. 쌍용차 법정관리인은 이때까지 채권단 등에게 회생계획안을 제출해야 한다.
쌍용차 파업 사태가 더 길어지면 법정관리인이 스스로 회생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사측이 법원에 제출할 수 있는 회생계획안에는 갱생형과 청산형 두 가지가 있다. 회사를 살릴 방법이 있다면 갱생형 회생계획안을, 살릴 방법이 없다고 생각되면 청산형 계획안을 내게 되는 것. 회사 측은 2일 자료를 내고 “노조의 점거 파업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이 이뤄지지 않으면 관리인 판단에 따라 청산을 전제로 한 회생계획안 신청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산형 회생계획안은 청산가치가 계속기업가치보다 크거나 갱생형 회생계획안 작성이 어려울 때 관리인, 채권자, 주주 등이 작성을 신청할 수 있으며 법원의 허가를 받아 계획안을 작성한 뒤 관계인집회에서 담보권자 5분의 4 이상이 동의하면 가결된다. 청산형 회생계획안에는 자산 처분과 회수금액 분배 방법 등을 담게 된다. 이는 ‘청산 뒤 회생시키겠다’는 뜻이 아니며, 계획안에 따라 자산 처분 및 분배 절차가 끝나면 채무자인 회사는 해산돼 소멸한다.
협력업체 채권단 모임인 ‘쌍용차협동회채권단’은 이미 쌍용차가 회생할 수 있는 시한을 넘겼다고 판단하고 5일 법원에 쌍용차 조기 파산을 요청할 계획이다. 주채권은행인 한국산업은행도 보유 채권 대부분이 담보 채권이어서 쌍용차 청산에 따른 부담이 적은 편이다.
쌍용차 노사가 이달 중에 극적으로 타협에 성공해 생산을 재개하고 법정관리인이 갱생형 회생계획안을 내더라도 채권단 등 이해관계자들은 기업계속가치가 청산가치보다 작다고 판단하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법원은 채권단 등의 결정을 토대로 청산 여부를 인가하게 된다. 삼일회계법인은 5월 22일 열린 1차 관계인집회에서 쌍용차가 유지될 경우 미래 수익을 따진 계속기업가치는 1조3276억 원으로, 청산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가치인 9386억 원보다 많다고 법원에 보고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파업으로 유무형의 자산이 많이 손실돼 현재의 계속기업가치가 상당 부분 감소한 상태다. 쌍용차는 지난달 29일 현재 생산 차질 대수는 1만3907대, 이로 인한 손실액은 3002억 원이라고 밝혔다.
○ 파산하더라도 영향은 제한적
협력업체 상당수는 조만간 쌍용차에 납품할 부품 생산 설비를 없애거나 다른 용도로 전환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쌍용차가 회생 의지가 있더라도 부품 공급을 못 받아 생산 재개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쌍용차 협력업체들은 쌍용차를 조기 청산한 뒤 부실자산을 털어내고 우량 자산만으로 새 회사를 만드는 이른바 ‘굿(뉴) 쌍용’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이유일 법정관리인은 “법정관리인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법원이 판단할 일”이라고 말했다. ‘굿 쌍용’ 방안도 수천억 원의 돈을 새로 투입해야 하는 등 난관이 많다.
한편 자동차 전문가들은 쌍용차가 파산하더라도 지역 경제에 일부 피해가 미치겠지만, 국가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1월부터 생산대수가 크게 감소한 데다 5월 파업 이후 생산을 전혀 하지 못해 협력업체들도 새 판로 물색 등 파산에 따른 충격을 일부 흡수하지 않았겠느냐는 분석이다. 쌍용차 파산으로 일시에 일자리를 잃게 되는 근로자는 본사 고용인원 5000명을 포함해 약 2만 명으로 예상된다. 쌍용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도 2.1%에 그쳐 다른 업체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지만, 100만 명이 넘는 쌍용차 보유자들은 중고차 값 하락, 정비 어려움 등 이중고를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평택=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단 1명도 정리해고 못해” 노조 강경선회로 파국
사측은 협상 최종안을 내놓으면서 영업직 전환과 무급휴직의 형태로 6월 8일 정리해고된 974명의 40%인 390명을 구제하겠다고 밝혔다. 박영태 쌍용차 법정관리인과 한상균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이 지난달 27일 단독 심야회동 등을 통해 ‘40% 구제안’에 큰 틀에서 합의한 내용 그대로다. 그러나 노조는 협상에 들어가자 정리해고를 철회하고 희망자 40명가량만 영업직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했다. 정리해고자 없이 거의 전원이 쌍용차 직원 신분을 유지하겠다는 요구였다. 여기에 사내 협력업체 소속 비정규직 직원의 고용승계까지 요구했다. 사측은 협상 결렬 이후 “노조가 정리해고를 어느 선까지 수용할 수 있다고 해서 협상에 나섰으나 협상 도중 강경해진 요구를 듣고 적잖이 당황했다”고 털어놓았다.
이번 협상 결렬의 주요 이유는 노조의 강성 대의원들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노조 협상단은 7차례 협상 과정에서 ‘40% 구제안’을 받아들일 것을 대의원에게 요청했지만 번번이 강성 대의원들의 반대에 가로막힌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전권(全權)을 위임받지 못한 노조 협상단은 실질적인 대화가 거의 불가능했다. 쌍용차 노사 간 물밑대화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사측이 6차 협상에서 노조에 40% 구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렬밖에 없다고 밝혔지만 협상단은 강경파 대의원들을 설득하는 데 역부족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노조는 “사측이 대화를 빌미로 조합원들에게 굴종과 항복을 강요하고 있다”며 “협상 결렬의 책임은 사측에 있다”고 주장했다.
평택=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대의원들 ‘40% 구제안’ 거부
노조 “사측, 굴종-항복 강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