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입어야 돼?" 지난달 17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KT 본사로 출근한 직원들은 하나같이 흰색 티셔츠를 맞춰 입고 나타났다. 이 날은 매주 금요일을 올레 티셔츠 입는 '올레 데이' 첫 날로, 직원들은 등 뒤 '올레(Olleh)'라는 문구가 적힌 이 티셔츠를 의무적으로 입어야 했다. 올레는 KT가 KTF와 합병 후 내놓은 기업 브랜드로, KT는 이를 홍보하기 위해 티셔츠를 만들어 직원들에게 나눠준 것. 그러나 직원들은 "이런 투박한 그림은 처음"이라며 곤혹스런 표정이었다.
촌스러운 것은 티셔츠뿐이 아니다. KT가 대대적인 물량공세를 펼치고 있는 방송광고 등 마케팅 전반이 비슷한 느낌이다. 아이와 아내가 캠핑을 떠나자 환호를 지르는 남편, 도끼를 연못에 빠트린 다음 섹시한 선녀가 나타나자 기뻐하는 나무꾼 등 TV광고 10편의 줄거리가 대부분 '세련'과는 거리가 멀다. 광고에 사용된 만화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KT의 촌스러운 마케팅에는 나름대로 깊은 '미학'과 '전략'이 있다.
이 광고를 제작한 제일기획 광고6팀 김태해 팀장은 "과거 통합 브랜드 광고가 신뢰성, 정보성을 강조했지만 올레는 이미지 중심으로 유쾌한 느낌을 주려 했다"고 설명했다. 엉성한 듯 보이는 그림은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 마이클 밀러가 직접 그렸다. 광고 내용도 "더 잘 하겠다"는 식의 이성적 논리보다 '3초에 한 번 웃긴다'는 인터넷 유머의 공식을 따랐다.
KT의 파격 실험은 올해 초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광고문구로 화제를 모은 유선통합브랜드 '쿡' 때부터 시작됐다. KT 통합이미지 담당 남규택 전무는 "이석채 회장 취임, KTF와의 통합, 사기업으로의 전환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났지만 내부 조직 분위기는 긴축경영 등으로 가라앉아 있었다"면서 "이미지 쇄신을 통한 분위기 전환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KT 직원들은 "가볍다" "낯설다"고 불평하면서도 빠르게 바뀌는 중이다. 최근 KT는 사내 의사소통 활성화를 위해 사내 아이디어 사이트 'KT 아이디어 위키'를 개설했는데, 두 달 만에 6350건의 아이디어 게시글이 올라왔다. 이 중 온도계에 인터넷을 연결하자는 파격적인 아이디어 등이 실제 채택돼 검토 작업을 거치고 있다.
이석채 회장은 "공기업적인 권위주의를 지우는 것이 올해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 같은 노력의 하나로 모든 보고서를 2쪽 이내로 간소화 하자는 '보고서 간소화 정책'을 내놨다.
김범석기자 bsism@donga.com
김상훈기자 sanh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