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은행들에 대해 임금을 깎아 인건비를 줄이고 영업점 수도 줄이는 긴축대책을 요구하기로 했다. 또 대출금이 떼일 때에 대비한 충당금을 적절히 쌓았는지도 점검할 계획이다. 이는 경기회복 분위기를 틈타 구조조정을 서두르지 않고 있는 은행 경영진에 보내는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다.
5일 금융당국의 고위 관계자는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지금은 은행들이 강력한 비용절감 노력을 통해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손실에 대비해야 하는데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다”며 “여러 경로를 통해 인건비 등을 줄이도록 독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지난달 30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기업 구조조정 가속화 및 부실채권 정리방안’이 확정된 뒤에도 은행들이 부실 정리에 미온적이라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 화가 난 금융당국
최근 금융계는 은행과 기업의 실적이 함께 개선되고 있어 은행들이 스스로 덩치를 줄일 필요도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기업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지 않고 있다.
하지만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근 은행들의 2분기(4∼6월) 실적이 좋아졌다고 하는데 이는 일시적 요인에 따른 것으로 전체 수익구조는 여전히 엉망인 상태”라고 지적했다. 실제 올해 상반기 18개 국내 은행은 2조8000억 원의 순이익을 냈지만 작년 같은 기간보다는 4조 원 가까이 줄었다. 더 큰 문제는 은행의 이익창출능력을 나타내는 지표인 순이자마진이 작년 상반기 2.28%에서 올해 상반기에는 1.85%까지 떨어졌다는 점이다. 증시 상승으로 유가증권 매각에서 이익을 보는 등 호재가 있었지만 은행 고유 영역에서 스스로 수익을 내는 능력은 더 악화된 셈이다.
새로운 사업모델을 찾기 힘든 상황에서 수익성을 높일 유일한 방법은 비용절감이라는 게 당국의 분석이다. 일부 은행이 작년 말과 올해 초 실적이 극도로 나쁜 영업점을 정리해 국내 은행의 영업점 수는 3월 말 현재 7327개로 작년 말보다 173개 줄었지만 직원 수는 작년 말 9만7814명에서 올해 3월 말 기준 9만9115명으로 되레 늘었다.
금융당국은 올해 초 은행 임원들이 급여의 일부를 반납하고 신입행원의 연봉을 깎는 등 임금 조정을 했지만 은행원의 평균 임금이 전체 산업 종사자 평균 임금의 4배에 이르는 등 여전히 높은 상태라고 보고 있다.
○ 불만 많은 은행들
구조조정과 관련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대우그룹 계열사가 줄줄이 도산했는데 이는 초기에 부실을 정리하지 않아 피해가 더 커진 측면이 있다”며 “충당금 적립실태를 분석해 은행이 구조조정자로서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 따져보겠다”고 말했다. 올해 상반기 은행권의 충당금 적립금은 7조1000억 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의 3배 수준으로 늘었지만 일부 은행에서 회수하기 쉽지 않은 여신을 회수 가능한 채권으로 분류해 충당금을 적게 쌓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은행권은 정부의 긴축 요구와 충당금 적립 권고에 대해 나름대로 비용을 줄였을 뿐 아니라 충당금도 적절하게 쌓고 있다는 반응을 보인다. A은행의 경영기획담당 임원은 “은행 간 경쟁이 본격화하는데 영업점을 더 줄이는 조치를 내리긴 쉽지 않다”며 “당국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긴축을 요구할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최근 18개 국내 은행 부실채권 담당자에게 올해 말까지 부실채권비율을 1%로 낮추는 정리계획을 7일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B은행 부행장은 “외환위기 때 부실채권을 헐값에 팔아 큰 손해를 봤다”며 “경기가 조금만 살아나면 정상화될 수 있는 채권을 정부가 무조건 정리하라는 것은 수익성을 생각해야 할 은행의 처지를 도외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