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1135곳에 지점을 보유한 국민은행처럼 사업장이 전국 곳곳에 있는 기업은 지방자치단체별로 지방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 포스코와 현대자동차는 국세청의 세무조사는 물론이고 각각 사업장이 있는 포항시와 울산시에서도 별도의 세무조사를 받게 될 수 있다.’
7일 내년 예산안 편성 방향에 관한 비공개 당정회의가 열린 국회 본청 2층 귀빈식당. 기획재정부는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행정안전부가 내년부터 도입하기로 한 지방소득세가 기존 안대로 시행되면 이런 부작용이 예상된다고 보고했다.
지방소득세는 지방자치단체의 열악한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5월 정부와 여당이 도입하기로 결론을 냈지만 그 후에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국무총리실은 논란이 부처 간 갈등으로 비치는 것을 우려해 관계 부처에 반대의견을 자제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지방소득세 도입은 중앙과 지방의 균형발전 차원에서 필요성이 인정되지만 문제점이 있다면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9월 정기국회에 정부안을 제출하기 전에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납세 번거롭고 징세비용 늘수도
이날 당정회의 참석자들에 따르면 재정부는 가장 큰 문제점으로 납세자 불편을 꼽았다. 정부는 현행 소득세와 법인세에 10%씩 따라붙는 주민세를 명칭만 지방소득세로 바꿔 이르면 내년부터 도입할 방침이다. 이어 3년 뒤부터는 독자적인 과세표준(세금을 매기는 기준)과 세율, 감면제도를 갖춘 세금으로 발전시킨다는 구상이다. 이렇게 되면 납세자들은 현재 세무서에 소득세와 주민세를 합쳐 일괄 납부하던 것을 세무서(소득세)와 지자체(지방소득세)로 나눠 내야 한다. 지자체가 고유의 과세권을 갖게 되면 세무서와 지자체가 중복해서 세무조사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당 내서도 이견… 국회통과 진통 겪을 듯
지방소득세 부과 및 징수를 담당할 인력과 조직이 늘어나 징세행정비용이 크게 증가할 수 있다는 것도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재정부는 약 2만 명의 공무원이 지방소득세를 전담하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제시했다. 이는 한국 국세청 전체 직원(10일 현재 2만16명)과 맞먹는 규모다. 새로운 세목(稅目)을 신설해 세무행정 조직이 커지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핵심가치인 ‘작은 정부’와도 배치된다.
지자체장이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지방소득세를 경쟁적으로 깎아주면 세수 기반이 크게 축소될 수도 있다는 게 재정부의 시각이다. A 지자체가 지방소득세를 깎아줄 경우 인근 B 지자체도 낮출 수밖에 없어 ‘세금 깎기 경쟁’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 지방소득세 법안 난항 예고
당정회의에서 문제제기를 한 재정부도 지방소득세와 지방소비세의 도입 취지에는 원칙적으로 수긍하고 있다. 다만 세제(稅制)의 큰 틀을 바꾸는 사안인 만큼 구체적 시행 방안에 대해서는 세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재정부 당국자는 “지방재정 확충과 자립이라는 대원칙에는 동의한다”면서도 “다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제도의 허점도 불거질 수 있는 만큼 충분하고도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이재은 경기대 교수(경제학)는 “지방소득세를 도입하면 중앙정부의 정책에 의해 지방이 영향을 받는 일이 줄어들면서 지방의 자율성이 높아지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방소득세가 도입되면 중앙정부가 소득세율을 조정하더라도 지자체는 독자적인 세율을 유지할 수 있다. 반면 임주영 서울시립대 교수(세무학)는 “지방재정 자립 문제도 중요하지만 지자체가 새로운 재원을 가져야 할 만큼 업무가 늘어났는지도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사안과 관련해 당정협의를 맡고 있는 김광림 한나라당 제3정조위원장은 “정부 여당이 지방소득세 도입 방침을 정했으므로 그대로 추진할 것”이라며 “조만간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해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해 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당 내에서도 지방소득세를 놓고 적극론과 신중론이 맞서고 있어 9월 정기국회 때 관련법을 통과시키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자체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지방소득세와 소비세 도입에 미묘한 견해차를 보이고 있는 점도 걸림돌이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