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감성 되살려”
“손톱이 긴 여성이 휴대전화 버튼은 어떻게 누르는지 아세요?” “예전에 풀터치폰을 누르면서 사람들이 심심하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본사 사옥 내 디자인그룹 디자인전략파트. 국내에서 40여 명밖에 안 되는 ‘인간공학기술사’ 자격증을 보유한 권오채 책임은 휴대전화 이용 행태 분석에 열을 올렸다. 권 책임은 PUI(Physical User Interface) 랩(LAB)장을 맡고 있다. PUI팀이 있는 곳은 국내 전자회사 중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물리적 사용자 환경’으로 해석되는 PUI는 한글로 풀어써도 여전히 알쏭달쏭하다.
“PUI팀은 휴대전화 등 디지털기기 이용자 행태를 다각도로 분석해 휴대전화를 재미있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곳입니다. 특히 휴대전화 중에서도 손으로 만지는 부분들에 집중하지요.”(장은정 PUI팀 선임)
휴대전화의 ‘손맛’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 PUI팀의 최대 과제인 셈. PUI팀에는 인지공학과 인간공학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다. 이들에게 휴대전화 ‘손맛의 진화’ 과정을 들어봤다.
휴대전화 PUI의 시초는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휴대전화에는 ‘통화(SEND)’와 ‘꺼짐(END)’ 버튼 두 개가 맨 아래 있어서 이용자가 이 버튼을 누르다 휴대전화를 떨어뜨리곤 했다고 한다. 삼성전자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1993년 ‘통화(SEND)’와 ‘꺼짐(END)’ 버튼을 중간으로 올린 휴대전화(모델명 SH-700)를 내놓았다.
그러던 중 이건희 당시 삼성전자 회장은 “휴대전화 크기를 서양인 손에 맞게 키우는 방안을 고민해 봐라”라고 지시했다. 당시에는 무전기처럼 큰 휴대전화를 어떻게 하면 가볍게 쥐고 다닐 수 있을지가 큰 관심사여서 휴대전화 크기 축소 경쟁이 치열할 때였다. 하지만 해외 수출을 획기적으로 늘리려면 서양인 관점에서의 PUI도 필요하다는 설명이었다. 이렇게 해서 2001년 서양인들의 큰 손에 들어올 수 있도록 크기를 키운 ‘이건희폰’(SCH-X430)이 나왔다. 2004년에는 노년층도 쉽게 글씨를 볼 수 있도록 글자를 기존 휴대전화보다 1.5배 크게 한 ‘CEO폰’(SCH-E560)도 등장했다.
이후에는 이용자들이 다양한 기능을 손쉽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데 몰두했다. 휴대전화를 흔드는 동작만으로 음악을 재생할 수 있는 ‘동작인식폰’(SCH-S310)과 컴퓨터의 마우스와 같은 기능을 하는 포인터로 더 다양한 휴대전화 기능을 쓸 수 있도록 하는 ‘핑거마우스폰’(SCH-V960)이 잇달아 나왔다.
하지만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등 각종 기능이 더욱 복잡해지면서 ‘큰 화면’이 필요했다. 이렇게 해서 휴대전화 버튼을 없애는 대신 휴대전화 전면을 액정표시화면(LCD)으로 바꾼 ‘풀터치폰’이 출시됐다. 다만 더운 곳에 가면 휴대전화 작동이 제대로 안 되는 경우도 있고 버튼을 터치하는 재미가 없는 게 문제였다. 햇빛 아래에서는 화면이 잘 안 보이기도 하고 영상을 옆 사람과 함께 보기 위해 기울이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이런 점을 보완한 것이 ‘햅틱 아몰레드’(SCH-W850)이다. 자체적으로 빛을 내는 능동형 발광다이오드(AMOLED) 화면을 써서 색 재현율을 높이고, 온도 변화에도 강하게 했다. 또 이용자가 버스에 탔을 때나 이동할 때 ‘한 손’의 자유를 주기 위해 기존 두 손 조작에서 한 손 조작이 가능하도록 했다. 전체 화면에서 이용하고 싶은 메뉴를 골라 한 손으로 건드린 뒤 이를 위쪽 방향으로 밀면 화면이 확대되는 ‘원 핑거 줌(one finger zoom)’ 기능을 PUI팀이 고안했다. 권 책임은 “첨단 디지털기기에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덧씌운 ‘디지로그(디지털+아날로그)를 창조한다는 생각으로 일한다”고 말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