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S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사건과 관련해 기소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게 법원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판사 김창석)는 14일 이 전 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서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싼값에 발행해 아들 이재용 씨 등에게 넘겨 회사에 현저하게 손해를 입힌 점이 인정된다”며 이 전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과 벌금 1100억 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은 이미 조세포탈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 원이 확정된 상황이어서 이번 판결로 형량이 늘어나지는 않았다.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1996년 에버랜드 경영권 편법승계 의혹으로 시작된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법적 논란이 13년 만에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같은 혐의로 기소된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에게는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5년, 김인주 전 삼성전략기획실 사장에게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 주가 헐값 산정 ‘무죄’에서 ‘유죄’로
지난해 4월 삼성 비자금 특검팀이 이 전 회장을 기소하면서 적용한 혐의는 크게 조세포탈과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및 삼성SDS BW 저가발행에 따른 배임 등 세 가지였다. 이 가운데 조세포탈 혐의(유죄)와 에버랜드 CB 저가발행 혐의(무죄)는 5월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형이 확정됐다. 하지만 삼성SDS BW 부분은 1심, 항소심, 대법원, 파기환송심 등 네 차례 법원의 판단을 받으면서 ‘면소(免訴)→무죄→유죄 취지 파기 환송→유죄’라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삼성SDS 사건의 쟁점은 BW의 적정 가격을 얼마로 봐야 하는지와 싼값에 BW를 발행했다면 이것이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배임 행위가 되느냐 하는 것이었다. 특검팀은 BW의 주당 적정 가격을 5만5000원으로 보고 1999년 2월 당시 BW를 주당 7150원에 발행한 이 전 회장이 삼성SDS에 1539억 원의 손해를 끼쳤다며 기소했지만 1심 재판부는 지난해 7월 BW의 주당 가치를 9740원으로 산정해 피해액이 44억 원이라며 면소 판결했다.
이어 항소심은 무죄를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5월 상고심에서 “BW가 현저하게 싼값에 기존 주주가 아닌 제3자(이재용 씨)에게 배정됐다면 기존 주주와 회사 모두에 손해를 끼친 배임에 해당한다”며 사건을 유죄 취지로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4부는 BW의 주당 적정 가치를 1만4230원으로 정해 삼성SDS가 227억여 원의 손해를 봤다고 판단했다. 손해액이 50억 원이 넘기 때문에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특경가법 적용이 가능했고, 이에 따라 이 전 회장에게 유죄를 선고한 것이다.
○ 집행유예 선고 배경과 남은 절차
재판부는 삼성SDS BW가 현저하게 낮은 가격에 발행돼 유죄는 인정되지만 이 전 회장이 BW를 발행할 당시 ‘적절한 기준’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해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으로 보인다. 1999년 당시 비상장법인의 공정한 신주인수권 행사가격에 관한 기준 법령이나 판례가 없었기 때문에 싼값에 BW를 발행하면서도 위법성을 인식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는 것. 재판부 관계자는 “이 전 회장의 경제적 기여나 건강문제 등은 양형에 거의 고려하지 않고 법적 논증을 통해 결론을 냈다”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이 삼성SDS에 피해액을 모두 갚았고 지금까지 이 회사를 발전시켜온 점을 고려했다는 얘기다.
이날 판결에 대해 삼성 비자금 특검 수사를 지휘했던 조준웅 특검은 “다음 주 초에 재상고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경제개혁연대 등 진보 시민단체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파기환송심에서 SDS 사건의 유죄를 인정하고도 무죄로 판결했던 원심과 똑같은 형량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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