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보다 컨설팅” 회계법인 발빠른 변신

  • 입력 2009년 8월 18일 02시 55분


회계-세무감사 수임료 안오르자
돈되는 경영컨설팅 업무 몰려
일부 대형법인들 매출 60% 넘기도

국내 최대 회계법인인 삼일회계법인의 핵심 업무는 이제 ‘고유 분야’인 회계와 세무감사가 아니다. 리스크 관리, 정보기술(IT) 실사, 비즈니스프로세스리엔지니어링(BPR) 전략 같은 기업 상대 컨설팅이 삼일회계법인의 중심 업무다.

회사 전체 매출에서 컨설팅 관련 업무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절반을 넘었으며 회사 내 전문인력 3명 중 1명은 컨설팅 분야 담당이다. 삼일은 컨설팅 부문의 핵심 인재 확보에도 적극적이다. 이 회사는 기존의 수습 공인회계사 채용과는 별도로 5년 전부터 해외 경영학 석사(MBA) 출신을 중심으로 한 컨설턴트 공개채용에 나서 매년 50∼70명을 뽑았다.

삼일회계법인의 양일수 성과개선컨설팅(PIC)1본부장은 “재무회계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기존 컨설팅 회사들과는 차별화된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며 “리스크 관리와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대상으로 한 컨설팅에서는 일반 컨설팅 업체보다 경쟁력이 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 컨설팅 매출 급증 추세

국내 대형 회계법인들의 업무가 달라지고 있다.

17일 삼일회계법인,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삼정KPMG, 언스트앤드영 등 주요 회계법인에 따르면 회계법인들은 기존의 전문영역인 회계 및 세무감사 관련 업무 비중을 줄이는 대신 컨설팅 업무를 집중적으로 키우고 있다. 이들 4대 회계법인의 전체 매출에서 컨설팅 업무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에 육박하거나 넘어선 상태다. 삼일은 전체 매출의 65% 정도가 컨설팅 업무에서 나온다. 딜로이트안진은 60%, 삼정KPMG와 언스트앤드영은 각각 매출의 47%와 30%를 컨설팅 업무가 차지한다.

특히 삼일은 1986년부터 컨설팅 전문 자회사인 삼일경영컨설팅(2004년 삼일PwC컨설팅으로 사명 변경)을 두고 있었을 정도로 일찍부터 컨설팅 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이 회사는 외환위기 직후부터 컨설팅 역량을 집중적으로 키웠다.

딜로이트안진은 4년 전부터, 삼정KPMG는 2년 전부터 컨설팅 사업 비중이 전체 매출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언스트앤드영은 지난해 상반기까지는 전체 매출에서 컨설팅 비중이 10∼15%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7월 컨설팅 전문 자회사를 설립한 뒤 30% 정도까지 늘어났다.

○ 낮은 감사 수임료와 CFO 역할 변화가 이유

국내 회계법인들이 컨설팅 업무 비중을 늘리는 기본적인 이유로는 지나치게 낮은 회계 및 세무감사 수임료가 꼽힌다. 회계법인들에 따르면 외국과 달리 한국에선 2000년대 초반 이후 감사 업무 관련 수임료가 거의 오르지 않았다. 또 외국에선 감사 업무 중 변경 사항이 있을 때마다 추가 비용이 청구되지만 한국에선 웬만한 변경 사항에는 추가 비용을 청구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CFO의 역할이 바뀌었다는 것도 회계법인이 컨설팅 사업 비중을 키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딜로이트안진 전략기획본부의 조기훈 상무는 “과거 CFO는 단순히 재무만 챙기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재무 분야를 바탕으로 회사 전체의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며 “회계법인들이 예전에는 재무회계 시스템만 구축해 CFO에게 넘겨줬다면 이제는 새로운 시스템과 경영환경으로 나타날 수 있는 현상까지 CFO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2011년부터 적용되는 국제회계기준(IFRS) 때문에 CFO를 대상으로 한 컨설팅 사업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조 상무는 “IFRS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에 대한 컨설팅은 물론이고 이것이 적용된 뒤 벌어질 상황을 예측하고 미리 준비하는 게 목적인 컨설팅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다”며 “최근에는 기업들이 IFRS가 인사와 마케팅 같은 비(非)재무회계 분야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이냐는 점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많다”고 말했다.

한편 회계법인들의 컨설팅 업무 확대 움직임과 관련해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회계법인들이 자신들이 컨설팅해 준 회사에 대해 감사를 진행하는 건 스스로 문제를 내고 답을 말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양 본부장은 “재무제표 구성 같은 컨설팅을 진행한 회사에 대해 회계감사를 실시하는 것처럼 공정성 훼손 위험이 큰 업무 수행은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며 “컨설팅 사업이 커진다고 해서 컨설팅과 감사 업무 간의 ‘방화벽’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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