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이동통신 요금 수준에 대한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한국소비자원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각국의 이동통신 요금을 비교한 조사 결과를 잇달아 내놓으면서 “한국의 이동통신 요금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이동통신 업계가 조사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반발하면서 진실 공방이 가열되고 있는 것.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통신비 20% 인하를 대선 공약 가운데 하나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동통신 요금 문제는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뜨거운 이슈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 일본 총무성 조사, “한국 이동통신 요금 저렴한 편”
18일 본보가 입수한 일본 총무성의 ‘전기통신 요금 국제 비교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의 이동통신 요금 수준은 비교 대상 7개 도시 가운데 상대적으로 싼 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올해 3월을 기준으로 서울 도쿄 뉴욕 런던 파리 뒤셀도르프 스톡홀름의 통신요금을 비교했으며 일본 총무성 총합통신기반국이 작성해 이달 11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서울의 이동통신 요금은 저(低)용량 사용자(월간 음성통화 44분, 메일 7통)의 경우 7개 도시 중 스톡홀름을 제외하면 가장 싼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이 가장 비쌌고 파리, 도쿄가 뒤를 이었다. 중용량 사용자(음성 95분, 메일 385통, 데이터 1만6000패킷) 요금은 세 번째로 저렴했고, 고용량 사용자(음성 246분, 메일 770통, 데이터 정액제)는 중간 수준이었다. 도시별 가입자의 평균 이용량을 적용했을 때 요금도 서울은 월 2000엔(약 2만6600원)으로 파리(5000엔) 뉴욕(3800엔) 도쿄(2600엔)보다 저렴했다.
○ 국가별 순위 의미 있나
지난달 말 소비자원과 공정거래위원회는 메릴린치의 ‘글로벌 무선통신 매트릭스’ 보고서를 인용해 휴대전화 음성통화량이 비슷한 15개국 중에서 한국의 통화료가 가장 비싸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후 이달 11일 OECD 조사 발표에서도 한국의 이동통신 요금이 상대적으로 비싼 편인 것으로 지적됐다.
이처럼 발표마다 요금 수준에 차이가 나는 것은 조사기관마다 조사 방법, 각국의 구매력지수(PPP) 반영 여부 등이 다르고 환율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통신업계에선 조사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여 왔다.
한 이동통신 업체 관계자는 “월간 44분을 썼을 때 대폭 할인해 주는 요금제만 내놓으면 OECD 발표에서 이동통신 요금이 가장 싼 국가 순위 1위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OECD가 저용량 사용자의 경우 월간 44분을 기준으로 각국의 최저 요금제를 찾아 비교한다는 점을 비꼰 것이다.
한국의 이동통신 이용 실태를 적절하게 반영한 고유 모델이 없다는 점도 문제. 한국의 월평균 통화량은 약 313분으로 OECD 보고서의 대용량 사용자 기준보다 훨씬 많다. 일본의 경우 ‘도쿄 모델’로 불리는 자체 기준을 가지고 각국의 요금 수준을 평가해 정책 지표로 활용한다.
○ 요금 인하 여력 있다
이동통신 업계가 진입장벽이 있는, 일종의 독과점 상황에 있고 영업이익률이 지난해 평균 12.1%에 이르는 등 요금 인하 여력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동통신업계는 차세대 통신 설비 투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선 요금 인하가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익의 대부분을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한 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올해 2분기(4∼6월) 실적 발표 자료에 따르면 SK텔레콤 KT LG텔레콤 등은 매출액의 최대 40%에 이르는 금액을 보조금 지급 등 마케팅 비용으로 쓰고 있다.
▶본보 1일자 14면 참조
주무 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는 요금 논란과 관련해 인위적인 요금 인하 유도는 자제한다는 태도를 보여 왔다. 사업자 간 경쟁을 활성화하고 선불요금제 등 다양한 요금제를 도입해 요금 인하 효과를 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OECD 조사 결과가 발표된 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요금 인하 추진을 언급하면서 이동통신사들이 상당한 압박을 느끼고 있다.
방통위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과 함께 20일 휴대전화 요금 인하 방안을 찾기 위한 공개 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 세미나에서 소비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어떤 방안이 나올지 주목된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