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오리전문점 파산 후 독학으로 조리사자격증 따
유명 국숫집서 비법 배워…“몸은 고달프지만 즐겁다”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경기 남양주시 오남읍 양지리의 한 아파트 단지 앞에 자리 잡은 국수가게 ‘국시마루지짐이’의 한쪽 벽에는 이상국 시인의 ‘국수가 먹고 싶다’는 시가 적혀 있다. 33m²(10평) 남짓한 공간에 일곱 테이블이 들어선 소담한 국수가게는 이정희 씨(48·여)의 마지막 희망이다.
이 씨는 동아일보와 보건복지가족부, 하나금융그룹이 공동으로 펼치는 ‘2009 함께하는 희망 찾기1―탈출! 가계 부채’ 캠페인을 통해 선정된 무담보 소액신용대출(마이크로크레디트) 대상자다. 약 3개월간 창업을 준비하면서 지금의 가게 터를 발견해 17일 식당 문을 열었다. 하나희망재단에서 연 3%의 저금리로 빌려준 2000만 원과 친척들에게 빌린 2000만 원을 합쳐 원하던 곳에 가게를 낼 수 있었다. ‘희망 찾기 가게 1호점’(6월 9일 개업)인 홍상연 씨의 ‘은혜전기’에 이어 두 번째 희망 찾기 가게가 탄생한 것이다.
이 씨는 몇 년 전만 해도 굳이 맞벌이를 할 필요가 없는 전업주부였다. 2003년까지는 남편 김남구 씨(59)의 상황버섯 농사가 제법 잘됐다. 하지만 중국산 버섯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버섯 농사가 기울기 시작했다. 이 씨는 남편과 함께 버섯과 오리요리 전문점을 시작했지만 이마저도 조류인플루엔자 사태와 동업자의 사망으로 1억 원이 넘는 빚을 떠안고 2007년 파산신청을 하게 됐다.
이 씨 부부는 “우리에게 남은 건 국수가게밖에 없다”며 “많은 분들이 도와준 덕에 가게를 열 수 있었던 만큼 꼭 성공해 보답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 씨가 가게를 열면서 가장 신경을 쓴 것은 육수. 독학으로 한식 일식 중식 양식 등 4개의 조리사 자격증을 딴 이 씨지만 국수 육수는 자신이 없었다. 한 지인이 경기 성남시 분당신도시에서 ‘국시마루’라는 국수가게를 운영하는 조인호 사장의 도움을 받아보라고 귀띔했다. 이 씨는 자신의 사연을 소개한 동아일보 5월 22일자 신문(A8면 ‘마이크로크레디트 대상자로 뽑힌 5명의 각오’)을 들고 조 사장을 무작정 찾아갔다.
이 씨는 “국수가게 창업이 마지막 희망”이라며 “국수 조리 비법을 배우고 싶다”고 간청했다. 처음엔 거절했던 조 사장은 이 씨의 간절함과 진지함에 마음을 바꾸었다. 이 씨와 남편 김 씨는 사흘 동안 조 사장의 가게로 출근해 설거지를 하면서 육수 내는 법, 국수 삶는 법, 좋은 재료 구하는 법 등을 배웠다.
국수 메뉴는 잔치국수, 비빔국수, 콩국수, 칼국수 등 4가지. 모든 재료는 최고급 국내산을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세웠다. 멸치는 남해, 소금은 신안, 배추는 정선, 콩은 영암에서 가져오며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육수와 김치를 직접 만든다.
개업 첫날 이 씨는 손님들에게 면발은 어떤지, 김치 맛이 짜지는 않은지, 가격은 적당한지 등을 일일이 물어보며 점검을 했다. 방앗간에서 미리 맞춘 따끈따끈한 시루떡을 손님들에게 돌리며 앞으로 많이 들러 달라고 홍보도 했다.
이 씨는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남편과 둘이서 서빙부터 설거지까지 다 하기로 했다”며 “몸은 힘들지만 희망이 생겨서 마음은 가볍다”고 말했다. 이 씨가 세운 목표는 하루에 국수를 100그릇씩 팔기.
이날 개업을 축하해주기 위해 가게를 찾은 하나희망재단 윤철원 경영자문위원은 “창업 초보자들은 의욕만 앞서고 준비를 제대로 안 해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정희 씨는 창업 준비를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꼼꼼하게 했다”며 “주인의 성격을 닮은 깔끔하고 정갈한 국수가 인기를 끌 것”이라고 격려했다.
남양주=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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