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판 ‘빅토리가든’은 야채의 자급자족으로 유가와 물가 급등을 이겨내고, 먹을거리의 수송거리를 줄여 환경도 보호하자는 취지다. 세계를 강타한 불황의 그늘이 소비자의 의식과 태도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소비자 트렌드 컨설팅 회사인 트러젝터리의 폴 플래터스, 마이클 윌모트 파트너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최근호(2009년 7, 8월호)에 불황 이후 기업들이 주목해야 할 8개 소비자 트렌드를 분석한 논문을 게재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 40호(9월 1일자)는 이 논문의 전문을 게재한다. 다음은 주요 내용 요약.
○ 불황 이후 단순하고 편리한 상품이 뜬다
불황이 닥치면 스트레스가 늘고 단순함에 대한 욕구가 커진다. 단순하고 사용자 친화적인 기술에 대한 폭발적인 호응이 예상된다. 소비자의 구매력이 살아나더라도 복잡한 기능의 고가 제품보다 단순하고 최대의 가치를 주는 상품을 선호하게 된다는 것. 신뢰감을 주는 브랜드에 대한 수요도 늘고 소비자의 선택을 돕는 전문적 조언(사회적 네트워크나 상품 순위 사이트 등)의 필요성도 커질 것으로 분석됐다.
2000년대 들어 엔론, 월드컴의 분식회계로 촉발된 기업 이사회와 지배구조에 대한 관심이 이번 금융위기로 고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경기가 살아나면 부실기업에 대한 관심이 뒷전으로 밀려날 것으로 전망됐다.
○ 근검절약이 몸에 밴 신(新)소비층 등장
자발적인 근검절약과 소비자의 변덕은 불황 이후 강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과도한 소비에 대한 반감과 건전하게 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지면서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아도 되는 부유층까지 자발적으로 씀씀이를 줄이는 새로운 트렌드가 등장한 것.
이전까지 불황이 끝날 때 억눌린 수요가 한꺼번에 분출됐지만 이번 위기에서는 이런 ‘억압 수요’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자발적인 근검절약과 실용적인 만족을 추구하며 저렴한 물건을 구매하는 트렌드가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입맛에 맞는 브랜드와 상품에 지갑을 과감하게 열지만 마음에 맞지 않으면 곧바로 이탈하는 변덕스러운 소비자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 등을 통한 구전효과가 이런 트렌드를 강화시키는 요인이다.
○ 과시적인 친환경 소비 둔화
소비자들은 좋은 일이라고 느끼면 비싸더라도 과감히 지갑을 열었다. 불황기에는 저렴한 대체재를 찾는다. 한때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를 끌던 도요타의 친환경 자동차의 프리우스의 재고가 쌓이는 이유다. 그 대신 쓰레기를 줄이고 불필요한 전등을 끄거나 재활용을 늘리는 저렴하고 분별이 있는 친환경 소비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불황이 끝나면 이전과 같은 과시적인 환경 소비가 되살아날 것으로 예상됐다.
정부, 기업 등을 불신하는 현상이 주춤할 것으로 분석됐다. 소비자들이 이번 위기를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윤리적 소비와 극한체험은 뒷걸음질
공정거래(fair-trade) 상품, 지역 농산물, 방사란(放飼卵) 등을 구매하는 윤리적 소비는 불황으로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을 먹이고 가족의 보금자리를 지켜야 하는 상황에서 다른 나라의 굶주리는 아동이나 동물 복지에 대한 관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해 미국 적십자 등의 사회복지단체에 접수된 기부금이 전년 대비 두 자릿수의 하락세를 보였다. 윤리적 소비의 회복세도 더딜 것으로 예상됐다. 소비자들이 개인적인 욕구가 충족돼야 이타적 소비에 나서기 때문이다.
자동차 레이싱이나 사치스러운 항공 여행 등 극한체험도 이전 불황기처럼 수요가 위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남들과 달라 보이려는 과시적 소비가 당분간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것.
이 논문은 “이번 불황을 경험한 35세 이하의 소비자들은 단순함과 근검절약을 추구하면서 기업에는 매우 높은 윤리적 기준을 들이대는 변덕스럽고 친환경적인 소비자가 될 것”이라며 “현명한 기업이라면 이들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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