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불황을 경험한 소비자는 함부로 지갑 안열어

  • 입력 2009년 8월 22일 02시 58분


올해 초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는 주택 마당을 텃밭으로 가꾸는 ‘빅토리가든 2008+’ 시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시청 광장을 텃밭으로 꾸미기도 했다. 제1, 2차 세계대전 당시 물자 부족에 대비해 미국과 영국 시민들이 정원을 텃밭으로 바꿔 야채를 직접 재배하는 ‘빅토리가든’이 부활한 것.

2009년판 ‘빅토리가든’은 야채의 자급자족으로 유가와 물가 급등을 이겨내고, 먹을거리의 수송거리를 줄여 환경도 보호하자는 취지다. 세계를 강타한 불황의 그늘이 소비자의 의식과 태도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소비자 트렌드 컨설팅 회사인 트러젝터리의 폴 플래터스, 마이클 윌모트 파트너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최근호(2009년 7, 8월호)에 불황 이후 기업들이 주목해야 할 8개 소비자 트렌드를 분석한 논문을 게재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 40호(9월 1일자)는 이 논문의 전문을 게재한다. 다음은 주요 내용 요약.

○ 불황 이후 단순하고 편리한 상품이 뜬다

불황이 닥치면 스트레스가 늘고 단순함에 대한 욕구가 커진다. 단순하고 사용자 친화적인 기술에 대한 폭발적인 호응이 예상된다. 소비자의 구매력이 살아나더라도 복잡한 기능의 고가 제품보다 단순하고 최대의 가치를 주는 상품을 선호하게 된다는 것. 신뢰감을 주는 브랜드에 대한 수요도 늘고 소비자의 선택을 돕는 전문적 조언(사회적 네트워크나 상품 순위 사이트 등)의 필요성도 커질 것으로 분석됐다.

2000년대 들어 엔론, 월드컴의 분식회계로 촉발된 기업 이사회와 지배구조에 대한 관심이 이번 금융위기로 고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경기가 살아나면 부실기업에 대한 관심이 뒷전으로 밀려날 것으로 전망됐다.

○ 근검절약이 몸에 밴 신(新)소비층 등장

자발적인 근검절약과 소비자의 변덕은 불황 이후 강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과도한 소비에 대한 반감과 건전하게 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지면서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아도 되는 부유층까지 자발적으로 씀씀이를 줄이는 새로운 트렌드가 등장한 것.

이전까지 불황이 끝날 때 억눌린 수요가 한꺼번에 분출됐지만 이번 위기에서는 이런 ‘억압 수요’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자발적인 근검절약과 실용적인 만족을 추구하며 저렴한 물건을 구매하는 트렌드가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입맛에 맞는 브랜드와 상품에 지갑을 과감하게 열지만 마음에 맞지 않으면 곧바로 이탈하는 변덕스러운 소비자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 등을 통한 구전효과가 이런 트렌드를 강화시키는 요인이다.

○ 과시적인 친환경 소비 둔화

소비자들은 좋은 일이라고 느끼면 비싸더라도 과감히 지갑을 열었다. 불황기에는 저렴한 대체재를 찾는다. 한때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를 끌던 도요타의 친환경 자동차의 프리우스의 재고가 쌓이는 이유다. 그 대신 쓰레기를 줄이고 불필요한 전등을 끄거나 재활용을 늘리는 저렴하고 분별이 있는 친환경 소비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불황이 끝나면 이전과 같은 과시적인 환경 소비가 되살아날 것으로 예상됐다.

정부, 기업 등을 불신하는 현상이 주춤할 것으로 분석됐다. 소비자들이 이번 위기를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윤리적 소비와 극한체험은 뒷걸음질

공정거래(fair-trade) 상품, 지역 농산물, 방사란(放飼卵) 등을 구매하는 윤리적 소비는 불황으로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을 먹이고 가족의 보금자리를 지켜야 하는 상황에서 다른 나라의 굶주리는 아동이나 동물 복지에 대한 관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해 미국 적십자 등의 사회복지단체에 접수된 기부금이 전년 대비 두 자릿수의 하락세를 보였다. 윤리적 소비의 회복세도 더딜 것으로 예상됐다. 소비자들이 개인적인 욕구가 충족돼야 이타적 소비에 나서기 때문이다.

자동차 레이싱이나 사치스러운 항공 여행 등 극한체험도 이전 불황기처럼 수요가 위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남들과 달라 보이려는 과시적 소비가 당분간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것.

이 논문은 “이번 불황을 경험한 35세 이하의 소비자들은 단순함과 근검절약을 추구하면서 기업에는 매우 높은 윤리적 기준을 들이대는 변덕스럽고 친환경적인 소비자가 될 것”이라며 “현명한 기업이라면 이들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국내 첫 고품격 경영저널 동아비즈니스리뷰(DBR) 40호(2009년 9월 1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DBR 웹사이트 www.dongabiz.com, 개인 구독 문의 02-721-7800, 단체 구독 문의 02-2020-0685

▼전쟁과 경영/왜구 격파한 정지와 무명용사들

고려는 1350년 이후 왜구의 대규모 공격으로 참담하게 유린당했다. 백병전에 능한 왜구는 기동력을 갖춘 소형 선박을 이용해 대형 선박에 침투하는 게릴라식 공격을 감행했다. 고려의 무장 정지(鄭地)는 고향인 나주에서 부대원을 집중 훈련시켜 왜구의 소형 선박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붙들어 맨 후 공격하는 전술을 구사해 큰 성공을 거뒀다. 화약 무기 발전이라는 도움이 있었지만 병사들을 집중적으로 훈련시켜 역량을 높였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공 요인이었다.

▼정재승의 Money in the Brain/첫 인상으로 사원 뽑지 말라

인간에게는 과연 첫눈에 사람의 능력과 인간성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인간은 자신의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많은 정보 중 필요한 것만 택해 처리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따라서 첫눈에 사람을 판단하면 그 사람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기준으로 할 확률이 매우 높다. 한 번 내린 판단을 정당화하려는 인간의 습관은 이런 오류를 더욱 부추긴다.

▼회계를 통해 본 세상/어닝 서프라이즈를 맹신 말라

1980년대 중반에는 미국 기업 중 분기 실적이 월가 전망치와 정확하게 일치하거나 더 높은 회사의 비율이 40% 정도였다. 그러나 2000년대에는 이 수치가 80% 이상으로 치솟았다. 기업들은 금융시장의 실적 예상치에 부합하거나 이를 초과하는 이익, 즉 양(+)의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하려 애쓴다. 시장 예상치에 부합하거나 초과하는 실적을 달성해야만 주가가 상승하고, 반대의 경우 주가가 폭락하기 때문이다. 이는 이익 증가보다 손실 회피에 집중하는 인간의 특성과 깊은 연관이 있다.

▼스페이스 마케팅/스타 건축가는 성장의 원동력

일본 고베와 스위스 티치노는 매우 작은 도시다. 하지만 각각 안도 다다오와 마리오 보타라는 유명 건축가의 작품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세계 각국에서 엄청난 관광객이 몰려든다. 뉴욕 구겐하임 박물관을 만든 현대 건축의 거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시카고 경제에 미친 영향이 매년 2600만 달러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국에서는 지난 수십 년간 엄청나게 많은 양의 건축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그러나 한국은 단 한 명의 스타 건축가나 관광 명소로 떠오른 건축물을 배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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