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환매가 줄을 잇고 있다. 4월 시작된 대량 환매 현상은 6월에 다소 주춤하더니 7월 이후 다시 커지고 있는 추세다. 코스피는 3월 초 이후 60%가량 상승했다. 주식시장이 상승하는 동안의 이 같은 대량 환매 현상은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환매 양상도 특이하다. 상대적으로 장기 수익률이 양호하고 안정적인 펀드에서 더 많은 환매가 일어나고 있다. 그렇지 못한 펀드에서는 오히려 환매가 덜 한 편이다. 결국 투자자들은 손실이 비교적 많이 복구된 펀드에서 돈을 찾아갔다는 뜻이다.
지난해 말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한국처럼 이미 외환위기를 겪어 정신적 외상(外傷)을 겪어본 국민들에게는 또다시 끔찍한 악몽이 되풀이된 셈이었다. 그 충격 속에서 투자자들은 저마다 살아남을 방법들을 생각했다. 급선무는 바로 투자 원금을 되찾는 일이었다. 그 결과 지난해 큰 손해를 경험한 투자자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손실만은 피하고 싶어 하는 손실회피(loss aversion)형 투자자가 됐다. 본전만 되찾으면 투자를 그만 두고 싶은 것이다.
미국 주식시장에서 1984년부터 2002년까지 뮤추얼 펀드의 연간 평균수익률은 10.4%였다. 그러나 같은 기간 뮤추얼 펀드 투자자의 평균수익률은 2.5%에 그쳤다. 왜 많은 투자자는 펀드의 평균수익률만큼도 못한 수익을 냈을까. 이는 투자자들이 끊임없이 시장에서 들락날락하며 ‘고점 매수, 저점 매도’식의 매매를 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오랫동안 꾸준히 버티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물며 펀드 중에도 시장수익률을 이기는 사례가 그리 많지 않은데 펀드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의 수익률이 펀드 수익률보다 못하다는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기본적으로 손해를 좋아하는 투자자는 어디에도 없다. 손해를 싫어하는 것은 거의 본능에 가까운 것으로 마치 우리 몸에 퍼져 있는 통각신경세포와도 같은 것이다. 우리 몸에 통증에 대한 감각이 없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자기 손끝이 다쳤는지, 팔꿈치에 뜨거운 것이 닿았는지, 직접 보고 추론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을 것이다. 결국 자기 몸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고 불구가 되거나 때론 생명까지 잃을 수 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이렇게 존재하는 것도 이같이 통각을 통해 스스로를 지켜내는 자기 보호시스템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투자자들도 본능적으로 ‘투자의 통각신경세포’인 손실회피라는 신경기능을 뇌리에 깊이 장착하고 있다. 이 본능 때문에 많은 투자자는 수익을 내고, 또 경제적인 풍요도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손실을 무작정 피하려는 본능은 종종 의외의 부작용을 일으킨다. 손실이 났을 때의 괴로움을 도저히 참지 못하는 것이다. 투자자들은 손실이란 통증이 찾아오면 바로 치료에 들어간다. 가장 좋은 방법은 오로지 본전을 되찾는 것이다. 꾹 참고 기다리면 더 좋은 수익을 낼 수도 있겠지만 일단 본전만 되찾으면 이들은 바로 시장을 떠난다. 통증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통계를 보면 주식투자는 예금이나 국공채 투자보다 더 많은 수익을 투자자들에게 안겨줬다. 물론 그만큼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단기적으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고 손해를 무작정 피하려고만 한다면 문제가 된다. 요즘 투자자들처럼 본전만 회복하면 시장을 빠져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 돈은 결국 시장이 많이 상승한 미래의 언젠가에 주식시장을 다시 기웃거릴 것이다.
과거의 경험을 보면 이런 투자자들이 시장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장이 대세 상승을 했던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이는 왜 펀드의 수익률은 10.4%나 되는데 펀드투자자들은 2.5%밖에 못 버는지를 설명하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인생이 실패에서 성공으로 가는 과정인 것처럼 투자에서도 손실은 이익으로 가는 과정이다. 매번 본전만 되찾고 투자를 끝낸다면 리스크(risk)에 대한 리턴(return)은 영원히 못 찾을 것이다.
대신증권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