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 빚덩이 애물단지서 세계 D램시장 2위로 거듭나

  • 입력 2009년 8월 27일 02시 53분


하이닉스 출범 10년… 이천공장 가보니

일부 제품 품귀현상 빚어 공장 풀가동
이르면 내달부터 44나노급 D램 양산
“2등에 머물 수는 없다” 제2 도약 준비

“잃어버린 영토를 회복하자.”

이달 14일 경기 이천시 부발읍 하이닉스 이천공장. 주력 제품인 D램을 생산하는 ‘M10’ 라인 직원들은 떡을 돌리면서 축제 분위기로 들떠 있었다. 7월 실적이 기대 이상으로 좋게 나왔기 때문이다.

공장 직원들은 ‘다물군 전사’로 불린다. 다물은 고구려 시절에 ‘고조선의 옛 영토를 회복하자’는 데서 유래된 순우리말. 세계시장에서 하이닉스의 ‘영토’(점유율)를 넓혀 글로벌 1위로 올라서자는 취지다. 박재수 M10 제조기술담당 부장은 “일부 D램 제품은 품귀 현상을 빚을 정도여서 공장을 풀가동하고 있다”며 “다물군 전사들이 열심히 한 덕분에 하이닉스 부활의 ‘서광’이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7년 4분기 이후 7개 분기 연속 적자를 냈던 하이닉스는 올해 3분기(7∼9월) 영업흑자로 전환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대전자와 LG반도체가 빅딜(사업맞교환)을 통해 통합한 하이닉스가 올해로 출범 10년이 됐다. 당시 15조 원이 넘는 부채를 짊어지고 있던 ‘애물단지’는 세계 D램 시장 2위 업체로 거듭났다.

○ ‘하이닉스가 죽어야 한국이 산다’

통합 당시 하이닉스는 세계 D램 1위 업체로 출발했다. 세계시장 점유율 3위인 현대전자(11.4%)와 5위인 LG반도체(7.9%)를 합쳐 점유율이 19.3%로 삼성전자(18.5%)를 근소한 차로 앞섰다. 하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당시 하이닉스 부채는 15조8000억 원에 달했다. 설상가상으로 D램 가격 폭락으로 유동성 문제까지 생겼다. ‘하이닉스가 죽어야 한국 경제가 산다’는 말까지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하이닉스의 재기까지는 삼성전자 출신의 최진석 하이닉스 부사장(CTO)의 역할이 컸다. 최 부사장은 “이천공장을 둘러보니 기술력이 훌륭한 엔지니어가 많았다”며 “헝그리정신과 열정, 자존심만으로도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2001년 말 채권 금융기관들은 미국 마이크론에 하이닉스를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최 부사장은 당시 “하이닉스는 기초 투자가 잘돼 있어 투자금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투자를 최소화하면서 생산효율을 높일 수 있다”며 주채권은행을 설득했다. 결국 이 호소가 받아들여져 하이닉스 이사회는 마이크론에 대한 매각 방안을 부결시켰고, 마이크론은 하이닉스 인수 포기를 선언했다.

○ 사무실에 침대 갖다놓은 야전사령관

폭풍은 지나갔고, 하이닉스를 살리는 길은 혁신밖에 없었다. 최 부사장은 집무실에 간이침대를 갖다놓았다. 기술 개발과 생산성 향상을 통한 수율(收率·생산품 중 완성품 비율) 높이기에 매달렸다. 대규모 장치 산업인 반도체는 수율이 나빠지거나 생산량이 줄면 이익률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생산성을 높여 번 돈으로 다음 세대 기술에 투자했다”고 했다. 직원들과 함께 노력한 결과 일부 반도체 수율은 삼성전자를 넘어섰다. 당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007년 삼성전자 반도체 담당자를 질책할 때 최 부사장을 언급했던 일은 유명하다.

대규모 장치 산업인 반도체에서 투자와 이익이 비례한다는 ‘불문율’도 깼다. 생산라인 전체를 바꾸는 게 아니라 수율이 낮은 일부 공정 기계만 바꾸는 방식으로 투자비를 아꼈다. 이와 함께 연구개발(R&D)과 제조 분야의 ‘벽’을 허물었다. R&D 담당자가 제품 양산 시 제조본부로 가는 방식.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개발해도 생산에서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면 소용없기 때문이다.

○ 해외 경쟁사와 기술 격차 1년 이상으로 벌려

하이닉스는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이르면 9월 말부터는 프리미엄 반도체인 44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급 공정을 적용해 생산성을 50%가량 높인 D램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삼성전자가 최근 40nm급 양산을 시작했고, 마이크론 등 다른 경쟁사는 아직 60nm급 양산에 머물러있다. 해외 경쟁사와는 기술 격차를 1년 이상으로 벌리게 된다. 44nm 공정은 D램을 만들 때 원판 실리콘 웨이퍼 위에 그리는 회로선 폭을 44nm까지로 줄여 한 웨이퍼에서 더 많은 D램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한 첨단 공정. 김대영 하이닉스 수석연구원은 “44nm 공정을 성공하지 못하면 영원히 2등에 머물 것이라는 생각으로 공정 개발에 매달렸다”고 했다. 현재 4위인 낸드플래시도 연내 32nm 공정 양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김진웅 하이닉스 상무는 “2위인 도시바와의 격차를 3개월로 줄여 바짝 추격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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