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현 교수의 디자인 읽기]감성 디자인

  • 입력 2009년 9월 5일 02시 51분


감성 디자인, 소비자 방어심리 뚫는 ‘요술 방망이’

‘감성 디자인’이란 말이 부쩍 강조되고 있다. 본래 ‘디자인’과 ‘감성’은 불가분의 관계인데도 이 단어가 새삼 주목을 받는 것은 감성의 힘이 생각보다 크고 다양함을 깨닫게 됐기 때문인 듯하다. 그만큼 감성을 들여다보는 안목도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

예컨대 광고와 같은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보면 감성의 적용을 메시지(what)의 측면과 그 메시지의 표현(how)의 측면으로 나눠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감성은 이 두 국면에 걸쳐 각기 독립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쉽게 말해 메시지가 감성적이지만 표현은 이성적일 수 있고 메시지는 이성적이지만 표현이 감성적일 수도 있다. 반대로 메시지와 표현이 모두 감성적이거나 이성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모 시사월간지의 첫 페이지를 나란히 장식한 사진의 두 광고는 이런 맥락에서 매우 대조적이다. 둘 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의 것으로 왼쪽은 통신회사의 기업광고, 오른쪽은 제품 광고다. 두 광고의 표면적 메시지는 왼쪽은 ‘더 큰 세상을 발견할 것이다’이고 오른쪽은 ‘하늘과 땅 차이’다. 여기 숨겨진 의도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두 광고 모두 제품의 기능이나 가격과 같은 이성적 소구점을 직접 거론하지 않지만 왼쪽은 감성적, 오른쪽은 이성적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왼쪽은 더 넓은 세상을 동경하는 인간의 생래적 욕구라는 감성을 자사가 충족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더 넓은 세상이 왜 좋은 것인지, 자신들의 회사가 더 넓은 세상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와 같은 이성적 설명은 없다. 오른쪽 광고는 자신들의 제품 기능(여기서는 화질)이 타 제품과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는 이성적 소구를 하고 있다. 만약 ‘성공한 중산층의 TV’ 혹은 ‘거실의 모더니즘’처럼 사회적 소속감이나 소비자들이 바라는 감성적 욕구를 소구점으로 삼았다면 감성적 메시지라고 평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 광고의 진정한 메시지는 화질에 대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이는 삼성이란 브랜드를 소비하려는 사람들의 자기 합리화를 돕기 위한 장치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눈에 보이는 것만 갖고 논한다면 왼쪽은 감성적, 오른쪽은 이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표현에서도 확연히 대비된다. 왼쪽은 ‘더 큰 세상’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 그보다는 ‘큰’이라는 형용사(감성어)에 주목해 큰 것을 보았을 때처럼 시원하고 탁 트인 느낌을 주는 바다 풍경을 제시하고 있다. 반면에 오른쪽 광고는 ‘하늘’과 ‘땅’이라는 명사에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 모니터 속에 하늘과 땅을 직접 담아 보여줬다. 만약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까마득한 느낌을 줄 수 있는 그림을 이용했다면 감성적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 두 광고는 왼쪽은 감성적 메시지에 감성적 표현, 오른쪽은 이성적 메시지에 이성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두 광고 중 어느 하나가 더 수준이 높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각기 처한 상황에 맞게 최선을 다한 광고들이다. 다만 여기서 생각해보고 싶은 대목이 있다.

하나는 광고에서 감성의 역할이다. 감성은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소비자-기업 관계를 만드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성적 이해에 기반해서도 소비자-기업 관계를 만들 수 있지만 안정성이나 지속성이 약하며 경쟁사가 모방하기도 쉽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감성만 강조한다고 소비자-기업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업에 맞는 적절한 감성을 찾아 일관되게 광고에 표현해야 한다. 또한 감성은 소비자들의 방어심리를 뚫는 첨병 역할을 할 수 있다. 소비자들은 광고를 보며 나름의 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그러나 이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 감성은 방어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또 하나, 광고 문구와 그림의 역할 분담이다. 광고계에서는 문구와 그림이 같은 내용일 때 광고효과가 높아진다고 말한다. 옳은 말이지만 글과 그림이 동어반복의 관계일 때도 그러할까? 예컨대 사진의 광고에서 ‘하늘’이라는 글자와 하늘 사진은 거의 같은 내용을 전달하는 동어반복의 사례다. 대개의 광고가 글과 그림으로 구성된 것은 글과 그림을 조합해 메시지의 완결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또 대체로 글은 이성적 정보, 그림은 감성적 정보를 전달하는 데 유리하다. 이런 점을 감안해 글과 그림이 메시지의 이성적 혹은 어의적 정보와 감성 정보를 상호 보완적으로 분담하게 만들어야 메시지의 낭비를 줄일 수 있다. 물론 그 관계가 뒤바뀌는 경우도 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동어반복 관계인 광고문구와 그림은 낭비라 할 수도 있다. 감성 디자인이 회자되는 요즘 자주 떠오르는 생각들이다.

지상현 한성대 교수·미디어디자인콘텐츠학부

psyjee@hans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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