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경제부는 올 4월 ‘자동차산업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부품소재 기업의 인수합병(M&A)이 활발해지도록 1조 원 규모의 ‘부품소재 M&A 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발표 후 5개월이 지났지만 약속된 펀드는 만들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하다. 지경부 관계자는 “하긴 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아직까지 구체화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정부의 각종 경제정책 발표에서는 펀드를 조성해 관련 산업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 단골처럼 등장한다. 지난해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지금까지 발표된 펀드만 해도 녹색, 설비투자, 글로벌 인프라, 바이오메디컬전문, 발광다이오드(LED) 보급 촉진, 드라마, 한식세계화 등 손가락으로 꼽기 힘들 정도다. 총규모는 10조 원을 훌쩍 넘는다. 그러나 수요와 자금조달 방안을 면밀히 따져보지 않은 채 발표한 것이 많아 상당수 펀드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
정부 부처들이 펀드를 선호하는 것은 예산 투입 없이도 자금시장을 활용해 구조조정, 미래산업 육성, 중소기업 지원 등 원하는 정책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녹색산업처럼 불확실성이 크고 아직 초기단계인 업종은 투자자금을 모으기 힘들다”며 “녹색인증, 소득공제 등 정책적 지원을 통해 시장기능을 보완하면 시장친화적인 방법으로 관련 산업을 육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발표된 펀드 중에는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을 활용하겠다는 총론만 있을 뿐 실제로 펀드를 어떻게 조성해 운영하겠다는 구체적인 각론이 없는 것이 적지 않다. 농림수산식품부의 ‘한식 세계화 투자펀드’가 대표적인 예다. 농림부는 5월 다른 부처와 함께 발표한 ‘신(新)성장동력 종합 추진계획’에서 한식 세계화를 추진할 수 있는 투자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독립적인 펀드를 만들지, 현재 운용 중인 다른 펀드를 활용할지, 모태펀드를 통해 투자할지를 두고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면서 표류 중인 상태다.
7월 초 열린 제3차 민관 합동회의에서 정부는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외에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3조 원)를 동원해 8월 말까지 5조 원 규모의 설비투자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관투자가들의 참여 부족으로 결국 산은과 기은만 참여하는 2조 원 규모의 펀드로 축소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류(韓流) 드라마에 투자하는 500억 원 규모의 드라마 펀드를 조성하겠다고 했지만 자금 조달이 쉽지 않자 일단 300억 원 규모로 줄여서 시작하기로 했다. 문화부 관계자는 “자금을 더 모으려고 했지만 시장 상황이 안 좋아서 일단 300억 원으로 시작하고 올해 안에 200억 원을 추가로 조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투자자들이 제대로 모이지 않다 보니 민간자금을 활용한다는 취지가 무색하게 공기업들의 참여로만 이뤄지는 펀드도 적지 않다. 단골 동원 대상은 산은, 기은 같은 금융 공기업들이다. 7월 초 발표된 녹색펀드는 산은 중심으로 5000억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할 계획이었지만 실행 과정에서 산은이 맡고 있는 펀드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주체가 기은으로 바뀌는 해프닝이 빚어지기도 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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