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아날로그 깃발들고 ‘귀환’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9월 11일 02시 51분



레코드판 감성 살려 ‘아이튠스’ 업그레이드
몸 야위었지만 활기 넘쳐

"나는 꼿꼿합니다.(I'm vertical.)"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가 지난해 10월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감춘 이후 11개월 만에 대중들 앞에 섰다. 유니폼과도 같은 검은 터틀넥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은 똑같았지만 턱 선은 칼날처럼 날카로워졌고 볼은 전보다 더 패어 있었다. 그는 호르몬 이상치료를 위해 올 1월부터 회사 업무에서 손을 떼고 병가에 들어갔다.
오랜만에 나타난 그는 소문으로 돌던 자신의 간이식 수술에 대해 입을 열었다. "교통사고로 숨진 20대 중반의 기증자로부터 간 이식 수술을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의사가 살을 좀 찌워야 한다고 해서 아이스크림을 미친 듯이 먹고 있다"며 여유와 자신감을 보였다.
○ 변화의 키워드 '아날로그'
9일(현지시간) 행사가 열린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모스코니 센터는 해마다 애플의 컴퓨터 매킨토시 전시회가 열렸던 곳이다. 지난 2005년 1월, 잡스는 바로 그 자리에서 췌장암을 극복하고 건재를 과시했었다. 그로부터 다시 4년 반이 지난 이 날, 두 번째 건재함을 보여준 것이지만 전설적인 CEO의 귀환에 어울리는 신제품 공개는 없었다. 애플의 주가도 전날보다 1% 가량 떨어졌다.
신제품이라고는 비디오카메라가 달린 '아이팟 나노' MP3플레이어가 전부였다. 대신 아이팟 제품 가격을 20~100달러까지 일제히 낮췄다. 잡스가 내놓은 것은 신기술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이라고 할까. 그는 "새 기능을 넣기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제품을 사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날 또 눈길을 끈 것은 아날로그적 감성을 담아 내놓은 새로운 '아이튠즈'였다. 애플의 온라인 음악 상점을 이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그는 LP(레코드판) 시절의 감성을 되살리겠다며 도어즈, '데이브매튜스밴드' 등 유명 밴드들의 앨범 표지와 곡의 가사, 다양한 정보를 상세하게 소개해 판다고 밝혔다. 컴퓨터 파일로 음악을 들으면서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졌던 표지 디자인과 가사의 의미, 곡의 배열 등을 통해 소비자에게 디지털 '청취'만이 아닌, 아날로그적 '경험'을 하도록 했다.
사용자가 즐겨 듣는 음악 정보를 애플에 보내면, 컴퓨터가 분석해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좋아하는 다른 노래를 추천해 주는 '지니어스' 기능도 '믹스'라는 기능을 추가해 내놓았다. 이미 구입한 노래 중에 많이 듣지 않았거나 들은 지 오래된 노래들을 토대로 컴퓨터가 소비자들의 취향을 분석해 찾아주는 기능으로 수천 곡의 노래를 갖고 있어도 늘 몇몇 좋아하는 음악만 반복해 들었던 사람들이 더 다양한 음악을 즐기도록 배려한 것이다.
○ 잡스는 보였지만 '비틀스'는 없었다.
이날 발표회에서는 애플 매장에서 과연 '비틀스' 음악을 살 수 있을 지가 관심을 보았다. 애플은 온오프라인을 합쳐 세계 최대 매장인 아이튠즈 뮤직스토어에서 무려 85억 곡이 넘는 음악을 팔았지만 '비틀스'의 음악을 팔 수는 없었다. 저작권자들이 무단복제를 우려해 MP3파일로 변환해 파는 데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9일 음반사 EMI가 비틀스 앨범들을 디지털 기술로 다시 제작하면서 애플에서도 비로소 비틀스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또 같은 날 게임업체 '하모닉스'가 비틀스 음악을 주제로 한 리듬액션게임 '비틀스-록밴드'를 닌텐도 위, 소니 PS3 등 비디오 콘솔 게임으로 발매하는 등 비틀스의 디지털화에 대한 분위기가 고조됐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잡스는 비틀스에 대한 그 어떤 얘기도 하지 않았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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