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인들 “아직도 배고프다” ▼
이틀새 주식 1조6900억 순매수… 달러 약세+FTSE 선진지수 편입 효과
한국 기업의 실적이 좋아져 증시에 달러가 들어오지만 달러 유입 때문에 원화가치가 올라 기업의 예상실적이 나빠지는 이율배반적 상황은 주가와 환율이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 안정될 때까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한국 금융시장은 ‘외국인 잔치’
외국인은 17일 코스피시장에서 7864억 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최근 6거래일간 3조 원이 넘는 폭발적인 매수세다. 또 전날(16일)엔 9079억 원의 주식을 사들이며 1998년 집계 이후 역대 3번째 순매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최근 들어 국내 증시엔 개인들의 펀드 환매에 따른 기관 매도세, 단기급등에 대한 부담, 국내외 출구전략 단행 우려 등 여러 악재가 있었지만 주가는 외국인의 공격적 매수에 힘입어 이 모든 장애물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외국인의 매수세에는 미국 정부의 경기부양책과 유동성 공급에 따른 달러화 약세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 낮은 금리로 미국에서 달러화를 차입해 수익률이 높은 곳에 투자하는 ‘달러 캐리 자금’이 지속적으로 한국을 비롯한 신흥시장에 유입되고 있다. 외국인은 이 중에서도 경제회복 속도가 가장 빠른 한국시장을 선호하고 있다. 실제로 외국인은 올 들어 아시아 증시 가운데 한국 주식(25조 원)을 ‘편식’하다시피 많이 사들였다.
21일로 예정된 한국의 파이낸셜타임스스톡익스체인지(FTSE) 선진지수 편입을 앞두고 해외 펀드들이 한국 시장을 새로운 포트폴리오에 포함시키는 과정에서 미리 한국 주식을 사들인다는 분석도 많다. 피데스투자자문 김한진 부사장은 “외국인 자금 가운데 달러 캐리 자금은 단기성 자금이지만 FTSE 선진지수에 투자하는 자금의 절반 이상은 장기투자 성격이라 매수한 뒤 보유하는 단계를 거칠 것”이라고 말했다. FTSE 세계지수에서 시가총액 기준으로 선진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90%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증시에 새로 유입될 수 있는 자금은 100억∼300억 달러가 될 것으로 증권업계는 추산한다.
이 같은 외국인 자금 유입으로 이날 1,700 선을 노크한 코스피도 당분간 더 오를 여력이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 수출업계 “버팀목 사라진다” ▼
○ 환율효과 사라지나
LIG투자증권은 내년 연평균 환율이 달러당 1150원일 때 현대자동차의 영업이익은 올해 전망치와 비슷한 1조8510억 원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환율이 달러당 1100원 선으로 내려가면 영업이익은 1조4130억 원으로 23.7% 줄고, 1050원으로 더 내려가면 영업이익이 47.3% 감소해 거의 ‘반 토막’이 날 것으로 전망했다. 기아자동차도 내년 환율이 1150원이면 8320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1050원으로 떨어지면 750억 원까지 급감할 것으로 예상됐다. 토러스투자증권 오태동 연구원은 “달러 대비 원화가치가 오른다면 노키아, 모토로라 등이 경쟁자로 버티고 있는 휴대전화 산업도 투자매력이 약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원화가치의 급격한 상승은 성장률 등 거시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기획재정부는 이달 초 국회에 제출한 ‘거시경제 안정 보고서’에서 실질실효환율(교역상대국 비중과 물가수준을 고려해 추정한 통화 실질가치) 기준으로 원화가치가 5% 상승하면 민간소비가 0.7%포인트 증가하는 대신 성장률은 0.1%포인트 내려갈 것으로 추정했다. 원화가치 상승(환율 하락)은 수입물가 하락을 유발해 내수에 도움이 되지만 수출 감소가 단기적으로 성장률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KB투자증권 주이환 수석연구원은 “과거 환율이 1100원 이상에서만 움직이면 한국은 대체로 연간 경상수지 흑자를 냈다”며 “다만 아직 글로벌 수요가 부진한 점을 감안하면 1150원 이상은 유지돼야 안정적인 흑자를 낼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나마 원-달러 환율과 달리 원-엔 환율은 엔화의 초강세로 오히려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 위안거리다. 원-엔 환율은 지난달 초 100엔당 1250원대까지 내려갔지만 지금은 1330원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자동차, IT 등 한국의 주력 수출업종이 일본 기업과 경쟁관계에 있기 때문에 엔화 강세는 한국 기업의 가격경쟁력에 도움을 준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역사적으로 보면 원-달러 환율보다는 원-엔 환율이, 또 환율보다는 세계 경기 흐름이 대외수출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車-IT 등 환율효과 상실 비상… “1달러=1150원 이상 돼야 안정적 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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