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당진항 24차례 조정에 534억→7917억 ‘공사비 14배’

  • 입력 2009년 9월 18일 02시 59분


■ ‘돈 먹는 하마’ 국고지원 공공사업 실태

국고(國庫)에서 지원하는 대규모 공공사업의 총사업비가 추진 과정에서 눈덩이처럼 불어나면 이로 인한 손실은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이 된다. 추가로 투입되는 사업비 때문에 정작 써야 할 곳에 충분한 국고 지원이 어려워지고, 사업비 추가 요청이 관행처럼 굳어지면서 사업 주체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까지 불러올 수 있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재정지출을 늘리는 바람에 가뜩이나 재정적자가 불어난 상황에서 계획에도 없는 예산이 추가로 들어가는 일부 사업은 정부의 고민을 가중시키고 있다.

수요 예측 잘못해 1조800억↑
주민 반발 무마에 3800억↑
멋대로 설계 바꿔 500억↑

○ ‘일단 받고 보자’ 허술한 수요 예측

사업비가 늘어나는 원인 중 하나는 사전에 주민과의 협의가 부족한 상태에서 ‘일단 받고 보자’는 식으로 예산을 신청하기 때문이다.

경의선 용산∼문산 복선 전철 사업이 대표적인 예다. 국토해양부와 한국철도시설공단은 1992년 타당성 조사를 할 때만 해도 기존 지상노선에 철로를 추가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의 반대로 일부 구간을 지하로 변경하면서 3863억 원이 추가로 들었다. 결국 완공은 2001년에서 2012년으로 미뤄졌고 11차례 조정을 통해 사업비는 3179억 원에서 2조978억 원으로 560% 늘었다.

수요 예측을 잘못해 사업비가 늘어난 경우도 많다. 울산∼포항 고속도로는 1999년 예비타당성 조사 당시 사업비가 1조300억 원이었다. 하지만 설계 단계에서 사업 내용과 규모가 바뀌면서 공사비가 1조7712억 원으로 늘었다.

지나치게 공사비가 늘어나자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타당성 재조사에 착수했고, 그 결과 설계 및 수요예측이 잘못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공사는 다시 미뤄졌고 결국 10년이 지난 올해 6월 공사에 착수할 때는 사업비가 2조1104억 원으로 불어났다. 사업을 무리하게 벌이는 과정에서 경제성을 허술하게 분석했고, 그 결과 더 시급한 일에 쓸 수 있었던 시간과 예산을 허비한 것이다.

도로-항만 등 SOC 대부분
‘일단 시작하고보자’로 악순환
“국회서 예산심사 강화” 지적

○ 슬쩍 끼워넣기 관행이 문제

총사업비가 가장 많이 늘어난 사업은 평택·당진항 2단계 공사다. 이 사업은 24번의 조정을 거친 끝에 사업비가 534억 원에서 7917억 원으로 무려 1382% 늘었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전체 공사 중 일부 사업만으로 일단 공사를 시작한 뒤 다른 사업을 추가하는 관행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관행이 널리 퍼지다 보니 국고가 들어가는 사업인데도 정부와 협의 없이 사업비를 마음대로 늘린 곳도 있다. 경북대는 칠곡병원을 지으면서 교육과학기술부와 협의 없이 설계를 변경해 사업비를 497억 원에서 1038억 원으로 늘렸다가 적발됐다.

실제로 사업비가 2배 이상으로 늘어난 사업 67개 중 도로가 26개로 가장 많은 것은 보상 절차가 복잡한 탓도 있지만 추진 과정에서 설계가 바뀌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기획재정부는 수요예측 재조사를 실시하는 등 총사업비 관리를 강화하고 있지만 사업비 관리대상 기준(토목 300억 원, 건축 100억 원 이상)에서 제외되는 소규모 사업과 1999년 예비타당성 조사 도입 이전에 시작한 사업은 철저한 감시가 어려운 실정이다. 한나라당 정양석 의원은 “총사업비가 2배 이상 늘어나는 사업에 대해서는 국회가 타당성 조사를 하거나 예산심사를 통해 통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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