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까지만 해도 동네 어귀에 석유 가게가 많았다. 특이한 건 무슨 연유에서인지 얼음을 함께 팔고 있었다. 석유와 얼음이 ‘환상의 커플’이 된 데에는 많은 설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처음엔 겨울 난방용 석유를 팔다가 여름철이 되어 일손을 놓게 되니 얼음을 팔게 됐다’는 게 가장 설득력이 있다. 김치냉장고의 원조인 위니아만도의 ‘딤채’도 석유가게 사장의 고민과 비슷한 맥락에서 출발했다.
○ 신사업팀 ‘유레카’의 특명: 땅속 장독대를 재현하라
1991년 만도기계(현 위니아만도)는 신사업을 찾느라 골몰하고 있었다. 주력 제품인 에어컨은 여름에만 집중적으로 팔리는 상품이었다. 당시 만도기계는 범(汎)현대그룹인 한라그룹의 계열사로 현대자동차에 차량용 에어컨을 납품했다가 가정용 에어컨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름 한 철 에어컨을 팔고 나면 에어컨공장의 생산라인은 멈춰 섰다. 전국의 에어컨 대리점 주인들도 덩달아 일손을 놓아야 했다. 이때 한 대리점 사장이 ‘김치만 따로 보관하는 냉장고를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프랑스에는 와인용 냉장고가, 일본에는 생선용 냉장고가 있으니 한국에는 전통 음식인 김치만 따로 보관할 수 있는 냉장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회사 경영진은 무릎을 탁 쳤다. 실제로 서울 올림픽 등으로 1980년 후반부터 아파트가 급속하게 확산되면서 주택이 급감했다. 많은 가구가 김칫독을 묻을 마당이 없어 애를 먹고 있었다. 일반 냉장고에 김치를 보관하면 한 달을 못 버티고 맛이 쉽게 변했다. 위니아만도는 1993년 신사업팀인 ‘유레카’를 꾸리고 김치냉장고 개발에 돌입했다. 당시 가전 시장은 삼성전자, LG전자, 대우전자(현 대우일렉) 등의 ‘가전 3사’가 꽉 잡고 있었다. 사내 일부에서는 ‘과연 싸움이 되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이들은 ‘주거 문화는 급변하는데 김치 문화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우리 고유의 음식 문화와 위니아만도의 공조 기술을 접목하면 황금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설득했다.
○ 매년 김치 100만 포기 담근 사람들
냉각 방식도 일반 냉장고와 다른 방식을 선택하기로 했다. 기존 일반 냉장고는 저장고 내부의 냉기를 순환시켜 냉각하는 ‘간접냉각방식’으로 온도 편차가 10도를 넘나들어 김치나 찌개 등 수분이 많은 한국 음식은 수분이 쉽게 증발하는 단점이 있었다. 연구 결과 김칫독은 땅속에 있는 흙이 항아리를 직접 감싸면서 냉각하는 ‘직접 냉각’ 방식이었다. 유레카 팀은 온도 편차를 1도 안팎으로 제어한 직접 냉각 방식을 개발했다.
박은광 상품기획팀 과장은 “한국 전통의 온돌은 바닥을 직접 덥히는 반면 서양식 라디에이터는 온풍을 이용해 간접 난방을 한다”며 “김치냉장고가 온돌 방식을 채택했다면 일반 냉장고는 라디에이터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기존에 없던 제품을 만들려고 하니 시제품 만드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에어컨을 생산하는 공장 라인이 휴식 시간에 멈추기를 기다렸다가 김치냉장고 시제품을 만들었다. 김치냉장고 개념을 쉽게 이해하지 못해 섣불리 새로운 사업을 하려 하지 않으려는 부품업체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하는 일도 해야 했다. 그동안 에어컨 부품을 납품받는 ‘갑’이었지만 이제는 부품을 만들어 달라고 통사정하는 ‘을’의 처지로 바뀌어야 했다.
위니아만도는 소비자들에게 자동차 부품업체가 만든 냉장고라는 인식을 떨치려고 회사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신비주의 마케팅을 썼다.
제품 이름 ‘딤채’의 유래
조선시대 때 사용됐던 김치의 옛말. ‘소금물에 담근 채소(沈菜·침채)’는 딤채로 불렸고, 딤채는 이후 ‘짐채’를 거쳐 ‘김치’로 불리게 됐다. 위니아만도는 김장 김치의 옛 맛을 김치냉장고로 만들어내겠다는 뜻에서 딤채로 지었다고 설명했다.
서울 강남 주부 입소문 마케팅으로 돌풍
딤채에 대한 초기 시장 반응은 싸늘했다. 주부들은 ‘왜 김치냉장고를 따로 사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당시 딤채의 가격은 49만8000원(용량은 53L)으로 일반 냉장고 가격(70만∼80만 원대)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강남 일대 아파트단지에 김치냉장고 5000대를 뿌렸다. 주부들에게 ‘3개월 동안 우리 제품을 공짜로 빌려 줄 테니 한번 써보라. 마음에 들면 반값에 사고, 마음에 안 들면 반품해도 좋다’고 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김치가 쉽게 시어버리지 않는다’ ‘포도를 넣어두었다가 잊어먹고 1주일 뒤 꺼내봤더니 여전히 싱싱했다’ ‘한약재를 오래 보관할 수 있다’ 등의 평가가 잇따랐다. 심지어 딤채 구입 ‘계’까지 등장했다. ‘아줌마 입소문’의 위력을 경험한 위니아만도는 이를 곧 마케팅에 활용했다. ‘딤채 계’를 만들어 오면 계원 10명당 1명에게 딤채를 선물한 것.
딤채 판매 대수는 출시 첫해인 1995년 4000대에서 1996년 2만5000대, 1997년 8만 대, 1998년 20만 대로 늘었다. 외환위기 직후에도 공장을 풀가동하고 구조조정이 없는 몇 안 되는 회사로 꼽혔다.
올해로 김치냉장고가 등장한 지 15년이 된다. 위니아만도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치냉장고 보급률은 80%에 이른다. 5집 중 4집꼴로 갖고 있는 셈이다. 이 중 위니아만도는 전체 김치냉장고 시장을 37%(자체 집계·1월∼8월 말 누적 출하량 기준) 점유해 삼성전자의 김치냉장고 ‘지펠 아삭’과 함께 쌍두마차로 불리고 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김치냉장고 10개사 경쟁… 스탠드型까지 나와위니아만도가 최초로 개발한 김치냉장고가 한국 사회에 보편화되면서 파급효과가 적지 않다. 우선 김장 풍속도가 크게 변했다. 매년 11월경 배추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김치를 담그던 모습을 이제는 보기 힘들어졌다. 굳이 김장철에 김치를 담그지 않더라도 김치냉장고를 통해 적정한 온도에서 김치를 익힐 수 있기 때문에 주부들은 연중으로 소량씩 담그게 됐다. 심지어 ‘여름 김장’도 등장했다. 김장철이 연중 분산되다 보니 배추, 무, 고추 등 채소류와 양념류 가격을 안정시키는 데에 역할을 했다.
포장 김치 판매를 늘리는 데에도 한몫 했다. 예전에는 일반 냉장고에 김치를 오랫동안 보관하기 힘들어 소비자들이 김치를 소량으로 샀다. 하지만 김치냉장고에는 오래 보관할 수 있기 때문에 포장 김치를 대량 구매하는 소비자가 늘었다는 설명이다.
경제적인 효과도 만만치 않다. 삼성전자와 LG전자까지 김치냉장고 시장에 뛰어들면서 연 1조1000억 원 규모의 새로운 시장이 생겨났다. 현재 김치냉장고를 만드는 곳은 10곳으로 중국 가전업체 하이얼도 김치냉장고를 만든다. 김치냉장고 자체도 진화를 거듭했다. 1995년 처음 나왔던 것은 52L짜리 소형이었지만 지금은 260L짜리 대형까지 나온다. 용도도 와인 야채 과일 육류 생선 음료수 등 갖가지 음식의 보관까지 가능하게 됐다. 초반에는 위에서 문을 여는 ‘뚜껑식’ 김치냉장고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용량이 대형화되고 김치 등 내용물을 꺼낼 때 허리를 숙여야 해서 불편하다는 지적에 따라 일반 냉장고와 같은 ‘스탠드형’ 김치냉장고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김치냉장고가 많이 보급됐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국내에서 김치냉장고 판매 대수는 2008년 110만 대로 2007년(113만 대)보다 줄었다. 아직은 ‘김치=한국인의 음식’이라는 한계가 있어서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기에는 역부족.
류봉수 위니아만도 경영기획팀장은 “위니아만도는 김치냉장고 원조 기업인 만큼 프리미엄 기술로 승부수를 두어 김치냉장고 1위의 자존심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일례로 위니아만도는 2010년형 김치냉장고를 최근 출시하면서 김치냉장고가 김치 온도를 자동으로 감지해 김치를 알아서 익혀주는 기능을 개발했다. 여름에 담근 김치와 겨울에 담근 김치의 온도 차가 최대 20도까지 나는 것을 감안한 것이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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