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펀드를 환매해 직접 투자에 나서는 투자자를 심심찮게 보게 된다. 신용잔액이 급격히 느는 것을 감안하면 이들은 돈을 빌려서라도 과감하게 투자하는 것 같다. 개별 주식의 수익률 변동폭이 포트폴리오로 분산된 펀드보다는 더 크므로 지금이 지난해에 본 손해를 만회할 적기라고 보는 것 같다. 이해는 되지만 한편으론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다음과 같은 제안이 있다고 가정하자.
①무조건 1000만 원을 받을 수 있는 제안과 ②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2000만 원, 뒷면이 나오면 0원을 받는 제안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면 여러분은 무엇을 택할까? ②의 제안은 운이 좋으면(확률 50%) 2000만 원이나 받을 수 있는 안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무조건 1000만 원을 받는 ①안을 더 많이 택한다. 일단 이익이 나는 상황에서는 리스크(위험)를 안지 않고 확실한 것부터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①무조건 1000만 원을 손해 보는 제안과 ②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2000만 원을 손해 보고 뒷면이 나오면 0원을 손해 보는 제안 중 하나를 고르라면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이익이 아닌 손해를 볼 가능성이 있는 이 상황에선 사람들은 손해를 100% 보는 선택은 어떻게 해서든지 피하려 한다. 그 대신 더 큰 손해를 볼 위험이 있더라도 손해를 전혀 안 볼 수도 있는 ②의 안을 선호하게 된다. 그러다가 자칫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는데도 말이다.
요약하면 투자자들은 이익을 볼 수 있는 상황에서는 그 금액이 적더라도 이익을 안정적으로 취하는 것을 택하고 손해가 날 상황에서는 조금이라도 손해를 피할 수만 있다면 이를 피하기 위해 리스크를 과감히 부담한다. 투자자들은 이렇게 이익을 볼 때와 손해를 볼 때 투자 리스크에 대한 판단을 달리 하는 이중적인 행동을 한다. 손해 볼 상황에서는 무슨 수를 쓰든지 이를 피해보려고 하는 손실혐오(loss aversion) 경향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투자자는 지난해와 같은 하락장에서 입은 손해를 올해는 무슨 위험을 걸고서라도 만회하려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이 바로 펀드를 깨서 리스크가 조금 더 높은 직접투자에 나서는 것이다. 물론 직접투자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최근 펀드를 깨 직접투자에 나선 상당수의 투자자가 평소에도 돈을 빌려 주식에 투자할 만큼 리스크를 걸던 사람들은 아니었다는 게 문제다.
1992년 7월 영국 베어링은행의 싱가포르 지사에서 파생상품딜러를 하던 릭 리슨은 부하직원의 실수로 약 2만 파운드의 손실을 보게 된다. 그것을 그대로 상부에 보고하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리슨은 이 문제를 조용히 해결하려고 사고를 일단 숨긴다. 그리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리스크를 걸며 투기성 거래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손실이 7억2000만 파운드까지 불어나면서 233년 역사의 베어링그룹은 결국 파산하고 만다.
투자에는 개개인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고유의 리스크가 있다. 이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의 정도를 뜻한다. 이익이 날 때는 별문제가 없지만 손해가 날 때 불필요한 위험을 걸어서 불행을 자초하는 일을 이렇게 과거 사례에서 종종 보게 된다.
워런 버핏의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의 지난해 결산 주주총회는 전년 대비 반 토막이 난 순익과 대규모의 손실로 분위기가 매우 우울했다고 한다. 하지만 버핏이 그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리스크가 높은 투기적 거래를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없다. 그는 자신의 평소 투자패턴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올해 버크셔 해서웨이의 실적은 누구나 짐작하겠지만 전년보다 크게 좋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익은 투자라는 위험을 건 데 대한 보답이다. 투자를 할 때는 누구나 일시적으로 손해를 볼 수도 있고 또 나중엔 더 큰 이익을 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손해는 투자의 한 과정으로만 받아들여야 한다. 손해가 났을 때 그것을 참지 못하고 평소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무모한 베팅을 하는 것은 더 큰 손해를 입게 되는 지름길이다. 단기적으론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허겁지겁하지 않고 평소의 투자 패턴을 유지하는 것이 건전한 투자심리를 가진 투자자들의 공통점이다.
송동근 대신증권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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