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휘발유 가격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10일 이명박 대통령이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강도 높은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한 뒤다. 8월 국제 휘발유 가격은 지난해 4월보다 32%가 떨어졌지만 같은 기간 국내 주유소 휘발유 가격은 1.6%가 내렸을 뿐이다. 이처럼 휘발유 값이 더디게 내리는 이유는 소수 정유사가 시장을 과점하기 때문이라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그러나 정유업계는 환율 효과와 유류세 인하 조치 종료, 관세율 인상 등을 들며 휘발유 가격이 결코 인위적으로 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정부는 휘발유 값을 잡기 위한 방법으로 크게 4가지 안을 내놓았다. △‘대형마트 주유소’ 등록을 완화하고 △NH(농협)오일을 키우며 △대형 정유사의 폭리를 감시하고 △정유사의 가격공개 범위를 모든 유통단계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NH 오일 키우기’는 일본 농협 주유소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전국에 농협 소유 주유소는 432개. 이 중 ‘NH 오일’ 간판을 건 곳은 15곳에 불과하다. 정부는 이 주유소를 전국 1만3000개 주유소의 10%인 1300개가량으로 늘려 휘발유 공동구매를 통해 낮은 가격에 휘발유를 사서 싸게 팔도록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럴 경우 휘발유를 L당 50원까지 내려 팔 수 있다고 지식경제부는 설명했다. 하지만 주유소 업계 관계자는 “현재 SK에너지나 GS칼텍스 간판을 달고 있는 주유소 주인들이 NH 오일로 옮겨갈 만한 인센티브가 없다”고 말했다. 이 방안에 대해선 농협을 관할하는 농림수산식품부와의 의견 조정도 필요하다.
또 지경부와 행정안전부 등 중앙부처 실무 관계자들로 구성된 조사단은 최근 주유소 관련 고시를 통해 마트 주유소를 규제하는 전국 기초자치단체를 찾아 현장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대형마트 주유소가 들어선 전국의 지자체에서 현지 주유소들의 반대 의견을 반영해 주유소 등록요건을 강화하거나 도시계획을 엄격하게 하는 방식으로 마트 주유소를 제한하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지경부는 지난달에도 마트 주유소 입점을 제한하는 기초 지자체 20곳의 경제 담당자들을 소집해 간담회를 열고 “마트 주유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전달한 바 있다. 그러나 주유소 주인들이 반대하는 한 지자체가 선뜻 대형마트 주유소를 등록해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편 정부는 얼마 전 황 함량이 낮은 저가 휘발유를 수입해 석유제품 가격을 낮추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환경오염을 유발할 우려가 있어 도입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외에도 시민단체를 통해 정유사의 폭리 여부를 검증하는 등 모니터링을 강화할 계획이다. 5월부터 공개하고 있는 정유사별 공급가뿐만 아니라 정유사-대리점-주유소 및 일반 판매소 등 단계별로 공급가를 공개하겠다는 방안이다. 일각에서는 휘발유 가격을 큰 폭으로 내릴 방법은 휘발유 가격의 절반에 이르는 세금을 손대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지경부 고위 관계자는 “세금에 손을 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지훈 수석연구원은 “정부의 정책에 실효성이 없어 보인다”며 “이산화탄소 감축 계획이 올해 말 발표될 예정이고 에너지 소비를 줄이자는 큰 캠페인이 전개되고 있는데, 에너지 소비를 늘릴 수 있도록 휘발유 가격을 내리는 정책 방향이 맞는지부터 짚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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