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한국지사장을 맡고 본사에서 제일 처음 받아본 보고서는 재무보고서도, 전략보고서도 아닌 ‘지속가능 보고서’였습니다. 이 보고서에서 재무성과가 차지하는 부분은 33%밖에 안 됩니다. 나머지 67%는 환경과 사회기여에 대한 평가로 채워지죠. 처음엔 정말 당황스러웠습니다.”(덴마크 식품기업 다니스코 한국지사 조원장 사장)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하지만 선진 기업들에 비재무적성과(ESG)는 이미 재무성과 이상으로 중요하게 생각되는 기업의 ‘얼굴 지표’다. 매년 지속가능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은 기본이고, 유명 글로벌 증시들이 선정하는 ‘지속가능성 기업지수’에 편입되기 위해 애쓴다. 크고 작은 기업 간 계약이나 투자자들의 투자 결정에 이 지수가 때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비재무적성과 중심 경영의 닻을 제일 먼저 올린 건 유럽지역 국가들이다. 유럽의 경우에는 공적 기구가 중심이 되어 기준을 제시하고 이를 기업들이 따라가는 방식이다. 유럽연합(EU)이 환경정책 수립 및 기업 환경성과 감시 기준으로 만든 환경관리감시제도(EMAS·1995년 제정)는 수질, 대기, 토양, 화학물질, 폐기물 관리, 소음 등 분야에서 200개 이상의 규제 법안을 담고 있다.
유럽지역 기업들은 이 기준에 따라 원료조달에서부터 폐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종합 측정해 정기 보고서를 만들어 공개해야 한다. 이 과정에 정부뿐 아니라 다양한 민간기구가 참여해 기업들의 ‘환경 성적’을 평가한다. 특히 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전기·전자, 화학, 자동차산업 분야 기업들은 집중 관리 대상이다.
독일계 화학기업 바스프 관계자는 “최근에는 제품 생산단계에서 얼마나 친환경적이냐 뿐만 아니라 생산된 제품이 얼마나 에너지 소비를 줄여주고 탄소배출을 감소시키느냐 하는 것까지 평가에 고려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포울 호이네스 주한 덴마크대사는 “덴마크에서는 대기업들이 연차 재무보고서에 환경경영을 포함한 사회적 책임경영 활동 정보를 넣는 게 법적인 의무”라며 “4년 전부터는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들까지 사회적 책임경영을 하도록 정부 차원의 교육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비재무적 성과 지표가 기업 평가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 지는 오래다. 대표 증시인 다우존스는 재무성과뿐 아니라 사회적, 환경적 성과를 종합 평가한 다우존스 지속가능성 지수(DJSI)를 만들어 1999년부터 발표하고 있다. 유럽 증시에서는 DJSI와 유사한 개념으로는 FTSE4good지수가 운용되고 있다.
현재 DJSI에 이름을 올린 기업 가운데 미국 기업 비중은 22.5%로 전 세계 국가 중 1위다. 그 뒤를 영국(21.7%) 독일(8.5%) 스위스(8.1%) 프랑스(6.9%) 등 유럽 국가들이 잇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 중 DJSI지수에 포함된 기업은 이달에 이름을 올린 삼성전자 삼성전기 롯데쇼핑을 포함해 삼성SDI 포스코 SK텔레콤 등 6곳이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