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매년 반복되는 파업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할 텐데….”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현대차 노조) 새 지부장으로 강성이 아닌 중도 실리 노선의 이경훈 후보(49)가 당선되자 현대차 안팎에서 쏟아져 나오는 얘기다. 갈등과 투쟁의 노사관계를 안정과 실리로 바꿔보자는 조합원들의 욕구가 이번 선거 결과로 나타난 만큼 앞으로 노사관계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고려대 경영학과 김동원 교수는 “현대차 노조 집행부에 중도실리파가 등장했다는 것은 노사관계가 안정화되고 있다는 것”이라며 “현대차 노조의 정치성 파업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 왜 중도 실리노선을 택했나
조합원들이 강경투쟁에 식상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현대차 노조는 1987년 설립 이후 한 해(1994년)만 제외하고 매년 파업을 벌였다. 2006년에는 비정규직법 처리와 임단협 등으로 한 해에만 11차례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노조 설립 이후 22년여 동안 벌인 파업 일수(파업 기간 중 휴일은 제외)는 1년에서 3일 모자라는 362일. 이에 따른 손실액은 무려 11조4654억 원에 이른다.
재계와 노동계에서는 현대차 노조원들이 매년 반복되는 파업에 피로감을 느낀 나머지 일종의 ‘선거혁명’을 일으킨 것으로 보고 있다. 2007년 금속노조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반대를 위한 정치파업을 추진하자 대다수 조합원이 파업을 반대한 것이 혁명의 첫 조짐이었다. 당시 집행부 측은 조합원들의 여론에 따라 금속노조의 5일간 파업 지침을 완전히 따르진 않았다. 또 올 들어 쌍용자동차 파업 때는 현장 조합원들의 ‘파업 반대’ 의견을 수렴해 금속노조의 동조파업 지침을 거부했다.
그동안 강성 집행부의 잇단 비리와 도덕성 시비도 중도실리노선 후보에게 표가 몰린 이유로 분석되고 있다. 실제 강성이었던 8대 집행부(당시 정갑득 위원장) 때는 노조 광고비 문제로 집행부가 임기 중 사퇴했다. 10대 이헌구 위원장은 뇌물수수로 구속됐고, 12대 집행부(당시 박유기 위원장) 시절에는 노조 창립기념품 비리가 불거져 집행부가 총사퇴했다.
○ 민주노총 금속노조 탈퇴도 시사
현대차 노조가 연간 100억 원의 연맹비를 금속노조에 납부한 뒤 50여억 원을 돌려받아 사용하고 있지만 교섭권과 단체행동권, 교섭체결권 등은 모두 금속노조가 갖고 있어 자주권이 없는 데 대한 조합원들의 불만도 이번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 이 때문에 현대차 노조 내 8∼10개 현장조직 가운데 ‘낮은 소리들의 모임’ 등 3개 조직은 “금속노조 탈퇴”를 그동안 끈질기게 주장해 왔다. 또 현대차 노조 내 판매위원회(조합원 6700명)와 정비위원회(〃 2700명)는 올 7월 금속노조가 현재의 ‘기업지부’에서 ‘지역지부’로 전환하려는 안에 대해 “고용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등 금속노조의 운영 방식을 비판해 왔다.
이 당선자도 이 같은 조합원의 여론을 의식해 선거 운동 과정에서 ‘금속노조를 바꾸지 못하면 현자지부도 무너진다’는 구호로 금속노조를 비판해 왔다. 그는 “2006년 6월 조합원 3분의 2의 찬성으로 금속노조로 전환했기에 당장 금속노조를 탈퇴할 수는 없다”고 전제하고 “하지만 (금속노조가) 조합원을 계속 실망시킨다면 상급단체인 금속노조가 갖고 있는 교섭권과 단체행동권, 교섭체결권을 되찾아오는 등 금속노조 문제를 확실히 짚고 넘어가겠다”고 밝혔다. 측근들은 이 당선자가 금속노조 문제를 거론한 것이 상급단체의 변경, 즉 금속노조 탈퇴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부 울산지청 관계자는 “현대차 노조는 현재 ‘기업지부’로 남으려고 하고 금속노조는 ‘지역지부’로 변화시키려고 해 앞으로 상당한 마찰이 예상된다”며 “하지만 금속노조와 현장의 강성 조합원들의 반발 때문에 당장 금속노조 탈퇴를 추진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이젠 파업 접었으면….”
대다수 조합원과 현대차 주변 상인들은 이번 선거 결과가 노사관계 안정화를 이루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조합원 이모 씨(45)는 “파업은 최후의 수단”이라며 “금속노조의 파업 지침에 무조건 따르기보다는 조합원 복지 등 실리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노조가 됐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그는 또 “그동안 강경투쟁을 추진하는 노조 집행부와 ‘이제는 파업을 하지 말자’는 현장 조합원들의 인식 차이가 이번 선거에서 표출됐다”고 덧붙였다.
현대차 울산공장 앞에서 식당을 하는 박모 씨(63·여)도 “이제부터는 국민과 울산시민들을 실망시키는 파업은 제발 하지 말고 노사가 ‘함께 살아가자’는 한마음으로 뭉쳤으면 한다”고 말했다.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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