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보면 그 회사 분위기 안다

  • 입력 2009년 9월 29일 19시 01분


SK커뮤니케이션즈의 화장실 전용 매체인‘티슈(T-ssue·토일렛 이슈)’. 사진 제공 SK커뮤니케이션즈
SK커뮤니케이션즈의 화장실 전용 매체인‘티슈(T-ssue·토일렛 이슈)’. 사진 제공 SK커뮤니케이션즈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건물의 일부 층에는 카드 키가 있어야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화장실이 있다. 회사 측은 "화장실이 사무실 내의 독립된 여러 공간으로 연결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출입 권한이 없는 사람이 보안 지역에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은 또 외부 손님이 이용하는 화장실의 소변기는 물을 사용하지 않고도 자동 세척하는 친환경 제품을 사용했다. 보안을 강화하고 친환경 경영을 하려는 삼성의 방침이 화장실에서 드러난 셈이다.

이처럼 화장실은 기업의 독특한 문화, 경영 목표를 전파하는 매개체로 활용될 수 있다. 화장실이라는 공간이 경영철학과 정보를 공유하는 소통의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는 것.

서울시 서대문구 미근동 SK커뮤니케이션즈에는 '화장실 전용 매체'인 '티슈(T-ssue·토일렛 이슈)'가 있다. 이 회사는 건물 내 24곳의 화장실을 사내(社內) 메시지 공유와 임직원 사교의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티슈'를 만들었다. 이 곳엔 시나 소설, 직원 소개 등의 내용이 담긴다. 이현정 SK커뮤니케이션즈 기업문화팀 차장은 "'놀이터 같은 일터'라는 기업 이념을 화장실에도 적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직원들의 감성을 북돋는 공간으로 화장실을 활용하는 기업도 많다. 한화그룹은 화장실에서 15년 째 잔잔한 음악을 방송하고 있다. 사업운영팀 직원이 DJ가 돼 음악을 선곡할 정도로 공을 들인다. CJ그룹의 남산 사옥 화장실에선 경쾌한 최신가요가, 금호그룹의 광화문 본사 화장실에선 고 박성용 명예회장이 애정을 쏟았던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온다.

전문가들은 기업이 화장실에 관심을 쏟는 것은 업무공간과 달리 화장실은 정신적, 신체적으로 무장해제를 하는 사적(私的)인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화장실에선 경계심 없이 경영자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기 쉽다는 얘기다. 또 위계가 무너지는 평등한 공간이기 때문에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회사의 사보(社報)나 사내 캠페인 홍보물이 화장실에 비치되는 단골 품목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용성 휴잇어소시엇츠 상무는 "회사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투입하려는 섬세하고 정교한 경영의 한 기법"이라고 평가했다.

화장실에는 직원들의 고민이 그대로 반영되기도 한다. 남용 부회장 취임 이후 영어공용화 정책을 시행 중인 LG전자의 화장실에는 임직원들의 '영어 고민'이 드러난다. 영어 스트레스를 받는 토종 LG맨들을 위해 이 회사의 화장실 안에는 영어로 보고서를 작성할 때 쓰이는 용어 등이 메모돼 있다. 출근시간이 빠른 한 대기업의 사옥 화장실에는 변기에 앉아 잠을 청하는 직원들이 많아서인지 "이용자 일부가 비데 시트 커버를 덮거나 뒤로 기대어 잠을 청하는 자리로 활용, 파손되는 사례가 많으니 목적에 맞게 사용 바란다"는 안내문이 적혀있어 눈길을 끈다.

김용석기자 nex@donga.com

김범석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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