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캐리 트레이드’가 확산돼 달러 약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달러 캐리 트레이드는 무슨 뜻이고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만약 여러분이 정기예금을 들려고 하는데 집 근처 은행 3군데가 서로 다른 금리를 제공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다른 조건이 같다면 당연히 높은 금리를 주는 은행에 예금을 하겠지요.
국제 자본시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금은 높은 수익률을 따라 이동하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저금리 국가에서 고금리 국가로 국제자본이 이동하는 것을 ‘캐리 트레이드(Carry Trade)’라고 합니다.
캐리 트레이드라는 표현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국가 간 자본 이동은 서로 다른 통화의 교환비율인 환율이 매개가 되므로 한 나라의 통화를 팔고 다른 통화를 사는 트레이드(Trade) 형식을 취하게 됩니다. ‘캐리(Carry)’는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매수한 통화를 계속 보유하면서 수익을 창출해 낸다는 뜻이죠.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기 전에는 ‘엔 캐리 트레이드’가 캐리 트레이드의 대명사였습니다. 제로 수준의 금리를 유지했던 일본 엔화를 빌려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와 수익률을 보였던 호주나 뉴질랜드, 그리고 유로권역에 투자해 수익을 내는 ‘엔 캐리 트레이드’가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투자자들은 엔화를 빌린 뒤 엔화를 팔고 다른 통화를 사서 투자를 했지요. 이 때문에 엔화는 지속적으로 약세를 보였고 호주달러 뉴질랜드달러 유로 등은 상대적으로 강세를 이어갔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최근에는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엔 캐리 트레이드가 2007년 정점에 오른 뒤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상당 부분 청산되고 있는 반면 미국 달러화가 캐리 트레이드 대상으로 급부상한 것입니다.
미국 정부가 제로금리 정책을 이어가면서 달러화를 빌리는 비용(금리)이 엔화보다도 싸졌기 때문입니다. 전대미문의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각국 정부는 경기부양에 총력을 기울이며 금리를 최대한 낮췄습니다. 특히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은 제로 수준으로 내리고 유례없이 강력한 경기부양책을 쓰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8월 24일부터는 달러 금리가 엔화 금리보다 1993년 5월 이후 16년 만에 처음으로 역전됐습니다. 달러 금리가 엔화 금리보다 낮아지면서 기존의 엔 캐리 트레이드가 달러 캐리 트레이드로 대체되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달러 조달금리는 연일 내려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한때 연 5%대까지 급등했던 달러 조달금리(3개월 리보)는 9월 중순 이후 0.3% 이하에서 사상 최저 수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달러 캐리 트레이드가 늘면서 글로벌 달러 약세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달러화를 빌려 팔고, 한국 등 상대적으로 빠른 경기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신흥국 통화를 산 뒤 해당국 증시 등에 투자하면 투자자들은 환차익과 주가수익을 동시에 노리며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러면 달러를 팔려는 사람이 늘어나고, 달러 공급이 늘어나면서 달러 가치는 더 떨어지게 됩니다. 반면 투자 자금이 유입되는 국가들의 통화는 강세를 보이게 되죠.
한국은행에 따르면 7월 중 국제수지 동향에서 자본수지를 구성하는 항목 중 증권투자수지가 79억4000만 달러 유입 초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국내 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의 순매수 규모는 올 들어 9월 중반까지 주식 23조 원, 채권은 30조 원이나 됩니다. 외국인 자본이 대규모로 한국 증시로 들어왔고 이 배경에는 달러 캐리 트레이드가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달러 캐리 트레이드는 미국의 저금리, 풍부한 유동성, 위험회피 성향 완화 등에 따라 당분간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하지만 달러 약세가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국제금융시장도 최근 긍정적인 지표들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여전히 불확실한 안갯속입니다.
엔 캐리 트레이드가 정점이던 때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이 저금리와 엔화 약세만 믿고 엔화 대출을 받았다가 2008년 이후 엔화가 급격히 강세로 돌아서고 금리도 오르면서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현재의 수익만 보고 섣불리 뛰어들다가 큰 손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죠.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경구를 다시 새겨보는 이유입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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