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시장 모처럼 큰 장… 덩치보다 ‘실속’ 따진다

  • 입력 2009년 9월 30일 02시 57분


업계, 부실 털어낸 대우인터내셔널 눈독
대우건설-동부메탈은 연내 매각 불투명
하이닉스반도체는 분할 매도 가능성도

거대 기업의 인수합병(M&A) 시장이 다시 열리고 있다. 최근 효성그룹과 현대중공업이 각각 하이닉스반도체와 현대종합상사의 인수의향서를 단독으로 제출한 데 이어 29일에는 대우건설의 입찰이 마감됐다. 다음 주에는 대우인터내셔널의 매각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동아일보 산업부가 29일 주요 증권사 애널리스트 11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하이닉스반도체와 대우인터내셔널,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현대종합상사 등 조만간 M&A 진행이 예상되는 5개 기업의 예상 매각 규모는 총 11조∼13조 원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M&A 매물은 많지만 ‘매수자’들은 신중을 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M&A를 자산 불리기의 수단으로 활용해 중견 기업들도 무조건 달려들던 기존 M&A 양상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M&A에 성공한 뒤 자금사정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그룹 자체가 흔들리는 ‘승자의 저주’가 최근 자주 나타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 많은 기업이 ‘군침’ 흘리는 대우인터내셔널

대우인터내셔널은 매물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기업이다. ‘군침’을 흘리는 기업이 많다. 포스코와 한화그룹, GS그룹 등이 대우인터내셔널의 잠재적 매수 후보로 꼽히고 있다. SK그룹과 STX그룹도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인터내셔널은 대우그룹 부도 영향에서 벗어나 부실을 털어낸 데다 해외자원개발 등 전망이 밝은 사업구조로 개편해 매력적이라는 분석이다. 대우인터내셔널이 가지고 있는 교보생명 지분 24%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대우인터내셔널의 인수를 위해서는 2조5000억∼3조 원이라는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겠지만 매각 절차는 순조로울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임영주 푸르덴셜투자증권 연구원은 “대우인터내셔널은 공적자금위원회의 매각 대상 1호이기 때문에 내년 상반기까지 매각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기영 SK증권 연구원도 “인수를 위한 자금부담 규모가 크고 해외자본 참여가 쉽지 않다는 걸림돌이 있지만 올해 안에 매각 주간사 회사가 선정되면 내년 상반기까지는 인수 주체도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하이닉스반도체와 현대종합상사, 엇갈리는 전망

효성이 단독 입찰한 하이닉스반도체와 현대중공업이 단독 입찰한 현대종합상사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하이닉스는 효성이 충분히 인수할 수 있다는 의견과 효성이 인수하기에는 버겁다는 의견이 팽팽한 반면 현대종합상사는 무난히 현대중공업에 팔릴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현대종합상사의 매각 규모는 2000억∼2500억 정도여서 현대중공업의 여력으로 볼 때 큰 부담은 아니다.

하이닉스반도체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29일 종가 기준으로 효성의 시가 총액은 2조4400여억 원, 하이닉스반도체의 시가총액은 11조5200여억 원에 달한다. 경영권 인수를 위해 필요한 자금만 최대 4조 원대로 추정된다. 효성이 하이닉스 인수 의향서를 제출한 다음 날인 23일 효성 주가는 가격제한폭까지 떨어져 시장은 ‘배보다 배꼽이 큰’ M&A 시도에 냉담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채권단이 하이닉스반도체의 지분을 분할 매도할 수도 있다는 예측이 나오면서 효성의 원활한 인수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송종호 대우증권 연구원은 “채권단이 연내 매각이라는 원칙을 지키고 효성이 사모펀드로부터 자금 조달에 성공한다면 매각이 무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 가격, 시황 이외에 M&A 발목 잡는 걸림돌

시장 전문가들은 M&A 시장이 냉각된 이유로 △매도자와 매수자의 가격차가 큰 점(동부메탈) △해당 기업의 업종 시황이 좋지 않은 점(대우조선해양, 대우건설) △해외매각을 제한하는 매각 방식(대우조선해양, 하이닉스반도체) △경영권 행사의 어려움(대우조선해양) 등을 꼽았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우건설과 금호생명의 조기 매각이 절실하지만 매수자를 찾는 데 난항을 겪고 있다. 금호생명은 1년 넘게 매각 진행이 지지부진하다. 지난해 12월 칸서스자산운용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으나 자금 유치에 실패해 결렬됐다.

대우건설 역시 연내 매각이 불투명하다. 동부그룹의 동부메탈 매각도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동부메탈은 산업은행이 인수를 추진하고 있지만 동부그룹은 7000억 원 이상을 요구하는 반면 산업은행이 부르는 가격은 4000억 원 정도여서 양측의 의견 차이가 크다. 대우조선해양은 노조가 매각의 걸림돌로 꼽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대우조선해양은 조선업 불경기라는 어려움 이외에도 강경 노조의 반대 등이 매각을 가로막는 이유로 분석된다”며 “여기에 루마니아 법인 부실 등의 악재까지 불거진다면 조만간 매각이 진행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기사에 도움을 준 애널리스트들=우리투자증권 송재학, 이왕상, 미래에셋증권 변성진, SK증권 김기영, 신영증권 이승우, 굿모닝신한증권 조인갑, 대우증권 송종호, 대신증권 반종욱, 한국투자증권 한상희, 푸르덴셜증권 임영주, 한화증권 김홍균

▼“승자의 저주 받을라” 기업들 선뜻 안나서
금호아시아나-두산-유진그룹 후유증
매물 쏟아져도 ‘배탈 안날 기업’ 저울질▼

최근 인수합병(M&A) 매물이 쏟아지고 있는데도 기업들이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은 미래 경영환경이 불투명한 탓도 있지만 ‘승자의 저주’에 대한 학습효과가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승자의 저주란 높은 가격을 써내 매물을 획득하는 데는 성공하지만 나중에 차입금 부담 등으로 인수 기업이 위험에 빠지는 현상을 말한다.

실제로 승자의 저주는 최근 주목을 끈 여러 M&A 사례에서 잇따라 현실화됐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전격 인수해 자산 규모를 늘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무리한 M&A로 유동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결국 대우건설을 되파는 처지가 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두산그룹도 2007년 미국 중장비 제조업체인 밥캣을 인수한 여파로 그룹의 자금상황이 일부 나빠지자 이의 타개책으로 두산DST, 삼화왕관 등 알짜 계열사 4곳을 매각하는 처지에 몰렸다. 자신보다 덩치가 큰 하이마트를 인수했던 유진그룹도 M&A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M&A 경쟁이 과열되면서 생기는 해프닝도 적지 않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10월 대우조선해양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가 인수를 포기하는 바람에 3150억 원의 인수이행보증금을 날릴 수도 있는 처지가 됐다.

이에 따라 최근 M&A 시장에서는 성장을 위한 확장 시나리오보다 ‘배탈이 나지 않을 기업’을 선별하는 눈치작전이 매수 희망 기업들 사이에 치열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또 상당수 매물은 국내 기업의 전략적 인수보다 사모(私募)펀드와 같은 재무적 투자자의 손에 넘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는 일부 매물에만 인수 희망자가 몰리고 다른 매물에는 인수자가 나서지 않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관심을 모았던 하이닉스반도체 인수와 관련해 효성그룹만 단독으로 인수의향을 밝히고 나선 것도 최근 M&A 흥행이 부진한 것을 말해주는 사례라는 분석도 있다. 이왕상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승자의 저주’ 영향으로 기업들이 무리한 인수를 자제할 뿐만 아니라 매도자인 채권은행들도 차입매수(LBO) 방식으로 인수에 나선 기업들의 손을 들어주기 어렵게 됐다”며 “결국 인수하려는 기업이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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