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8개월 연속 동결했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경기 회복이 불투명하고 부동산 가격 상승세가 둔화되고 있음을 언급하며 기준금리 인상 시기가 내년으로 늦춰질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날 이 총재의 발언으로 이른바 ‘출구전략(Exit Strategy)’ 시행이 연내에 어려워졌다는 전망이 힘을 얻으면서 증시는 오랜만에 큰 폭으로 올랐다.
한은은 9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재의 연 2.00%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 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 “당분간 금융완화 기조를 유지하겠다”며 “4분기 이후 경제성장, 선진국 경기 및 원자재시장 등을 보면서 경기가 꾸준히 좋아지고 금융시장도 안정되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두겠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지난달 금통위 발언이 금리 인상이 임박한 것으로 받아들여진 측면이 있다”며 “현재 기준금리 수준이 매우 강한 금융완화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이런 언급이 바로 다음 달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예고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발언은 지난달 금통위가 끝난 뒤에 금리 인상 필요성을 강하게 시사했던 것과는 크게 달라진 것이다.
거듭 강조했던 부동산 시장에 대한 경고도 이날은 한결 부드러워졌다. 이 총재는 “9월 중순 이후 가격 상승세가 둔화되는 움직임이 있다. 규제감독당국의 추가적인 조치가 효과를 내면 통화당국은 상당히 짐을 덜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은의 입장이 누그러진 데는 정부가 거듭 밝힌 ‘출구전략 시기상조론’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이 총재의 인식에는 변함이 없지만 상당수 금통위원들은 대통령까지 나서 ‘출구전략은 시기상조’라며 금리 인상을 반대하는 데 강한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졌다.
출구전략이 늦춰질 것이라는 전망에 증시는 오랜만에 급등세를 나타냈다. 이날 코스피는 전날보다 31.33포인트(1.94%) 오른 1,646.79로 거래를 마쳤다. 특히 이 총재의 발언 내용이 전해지면서 오후 들어 주가 상승폭이 컸다. 채권금리는 급락했다. 5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날보다 0.04%포인트 내린 연 4.77%로 떨어졌고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4.36%로 0.11%포인트 급락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거시경제실장은 “최근의 경제회복세는 적극적인 정부 정책의 힘이 컸고 국제경제에서는 더블딥(경기 회복 후 재침체) 우려가 여전히 남아있다”며 “민간의 회복세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연내에 금리를 올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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