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는 대우인터내셔널 대우건설 등 대형 인수합병(M&A)전에서 VVIP 대접을 받는다. 주변에서 군불을 지필 때가 더 많다고는 하지만, 팔려는 측에선 5조∼6조 원에 이르는 현금성 자산을 보유한 포스코를 구애 대상으로 삼을 만하다. 해외 네트워크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는 포스코의 사업다각화 밑그림에 따라 M&A 시장판도 변화를 예상하는 전문가가 많다. ‘굴뚝기업’ 포스코의 행보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 1위 조선업은 지난 20년간 고용창출과 수출증대에 혁혁한 공을 세운 한국의 간판 굴뚝산업이다. 세계 10대 조선소 중 8개가 한국 조선소일 정도로 최고의 위상을 뽐낸다. 조선업은 지난해 432억 달러를 수출해 자동차와 반도체를 제치고 수출 1위였다. 올해 글로벌 경기침체와 중국의 저가(低價) 수주전략으로 잠시 주춤하고 있지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원가 경쟁력과 고부가가치선 비중을 높이면서 위기를 넘을 것으로 기대된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우리에게 철강 조선 기계 등 전통 제조업 기반이 없었으면 지금처럼 신속한 위기 극복이 가능했을지 의문이 간다. 위기가 아직 끝난 것은 아니지만, 탄탄한 제조업 기반이 위기 극복의 일등공신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사실 이번 글로벌 경기침체는 금융위기가 촉발한 것이지, 제조업이 문제가 된 것은 아니었다. 미국 투자회사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시작한 신용위기가 전 세계로 전염된 결과, 아일랜드처럼 금융업과 외자유치로 일어선 나라가 외국계 자본의 대량 유출로 국가부도 위기에 몰리는 엄혹한 현실에 직면한 것이다. 한국도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원화가치는 하락) 위기 조짐이 있었지만, 우리에겐 제조업체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었다. 전통 제조업체들이 수출에서 막대한 외화를 벌어 술술 새던 금고(외환보유액)를 다시 채운 것. 제조업의 잉여이익이 금융업의 신용 회복에 적잖은 기여를 한 셈이다. 세계 수준급의 수출 제조업체가 있었기에 원화약세→외자유출→원화가치 추가하락의 악순환을 막을 수 있었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비즈니스위크도 신용위기가 퍼지던 시점인 2007년 10월 8일자의 한 기사에서 한국의 성장 견인차로 ‘철강 조선 등 굴뚝산업(Smokestack Industries)’을 지적해 눈길을 끈 적이 있다. 굴뚝산업이라는 용어에는 시대에 뒤떨어진, 한물간 산업이라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 언제부터 제조업을 굴뚝산업으로 뭉뚱그려 규정했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1999∼2000년 벤처 열풍이 한창 고조됐을 때 이 표현이 뿌리내린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벤처 아니면 명함을 내밀기 힘들던 시절에 벤처와 정보기술(IT)업체를 제외한 나머지 산업을 굴뚝산업으로 분류하면서 굳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제조업은 위기 때마다 상식을 깨뜨리는 혁신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발군의 적응력을 보였다. 조선업의 육상건조공법이나 포스코의 ‘파이넥스공법’ 등이 좋은 예다. 또 하나의 세계 최고라는 IT와의 융합 추세로 제조업의 미래는 더욱 밝아졌다. 이젠 제조업에서 ‘굴뚝’이라는 비하적 표현을 걷어낼 때가 됐다. 적당한 용어가 없으면 차라리 ‘2차 산업’이라고 부르자. 이강운 산업부 차장 kwoon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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