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동근의 멘탈 투자 강의]손실 혐오심리가 판단착오로

  • 입력 2009년 10월 12일 02시 57분


손실상태 펀드 붙잡고
“장부상 손해일뿐” 위안하다
비자발적 장기투자 대열에
원점서 냉철하게 평가해야

최근 증시 반등으로 투자자들이 하나둘씩 본전을 되찾으면서 국내 주식형 펀드에 대한 환매가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에 비해 중국 등 해외펀드에서는 환매가 그리 많지 않다. 국내펀드와는 달리 반등 폭이 크지 않아 여전히 투자 원금 대비 손실이 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요즘엔 국내펀드는 없이 아직 본전을 못 찾은 해외펀드만 달랑 들고 있는 투자자들을 주변에서 많이 본다. 이처럼 손해를 보고 있을 때는 무작정 기다리게 되는 것이 보통 투자자들의 투자습관이다.

이처럼 본전을 찾은 펀드만 환매하려는 투자심리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예를 하나 들어 보자. 여러분이 타던 자동차가 구입한 지 오래돼 고장이 잦다. 그래서 2000만 원짜리 새 차를 구입하려고 한다. 여러분은 지금 다음 두 개의 펀드에 투자를 하고 있다.

A펀드엔 원래 4000만 원을 투자했는데 ‘반 토막’이 나 2000만 원이 된 상황이다. 또 B펀드엔 1000만 원을 투자했는데 수익률이 좋아 현재 평가금액이 2000만 원으로 올랐다. 둘 중 어느 것을 환매해도 자동차 구입비 2000만 원을 마련할 수 있다. 자, 여러분은 어느 펀드를 팔겠는가?

이 문제에서 대부분 투자자들의 답은 이익이 난 B펀드를 파는 것이다. 왜 그럴까. 우선, 손실 상태인 A펀드를 환매하는 것은 손해를 확정 짓는 꼴이라서 싫다. 나중에라도 본전을 되찾거나 이익으로 돌아서면 그때 팔고 싶다. 그리고 B펀드는 이미 이익을 많이 냈기 때문에 나의 투자판단이 정확했다는 뜻이고 그래서 이 펀드를 환매하면 될 것 같다. 이렇게 이익이 난 것을 바로 처분하고 손해가 난 것은 계속 보유하며 기다리는 심리현상을 처분효과(disposition effect·또는 기분효과)라고 한다.

처분효과의 저변에는 이런 심리가 숨어있다.

첫째,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할 때 자기의 기분이 좋은 방향으로 하려 한다. 이익이 난 주식을 팔면 당연히 기분이 좋지만 손해가 난 주식을 팔면 내 투자가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되므로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이렇게 사람들은 자존감을 높이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된다.

둘째, 근본적으로 손실을 싫어하는 심리(손실혐오·loss aversion)가 깔려 있다. 손실 상태인 펀드를 들고 있을 때는 “이 손해는 단지 장부상의 손해일 뿐이지, 내가 팔지 않는 한 아직 손해는 아닌 거야”라고 생각한다. 당장은 평가손실이 나 있지만 팔지 않고 기다리다가 언젠가 반등할 때 팔겠다는 전략을 세운다. 그러다가 주가가 반등하지 않고 정체되거나 더 하락하면 이른바 ‘비(非)자발적인 장기투자자’가 되고 만다.

셋째, 투자자들은 “모든 주가는 오르내리기 마련이고, 많이 떨어진 주식의 가격도 나중에는 다시 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평균 회귀(mean reversion)’라고 한다. 지금은 비록 모두 손실이 나 있더라도, 기다렸다가 이익이 날 때 팔면 자기의 모든 투자는 성공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만약 투자자의 생각대로 모든 주가가 비슷한 구간을 계속 오르내린다면 이는 좋은 전략이 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살 기회를 놓쳐버린 주식은 계속 오르고, 무작정 들고 기다리는 주식이 계속 떨어지는 예는 주변에 너무도 많다.

그러면 위와 같은 상황의 투자자들은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까.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즉, 지금 A펀드와 B펀드 중 하나에 새로 투자한다고 가정하고 그중에서 미래가치가 더 나은 것은 유지하고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것은 환매하면 된다. 이때는 해당 펀드가 편입한 종목의 저평가 여부도 보고 성장성도 체크해야 한다. 또 이 과정에서 평가이익과 손실로 생기는 감정은 철저히 배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투자메리트가 떨어지면 그 주식이나 펀드는 팔아야 한다. 하지만 처분효과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이익이 나면 팔아도 되는 주식, 손해가 나면 못 파는 주식’이라는 이분법적인 판단을 하기 십상이다. 이들의 투자 판단에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 이런 투자의 결과엔 오직 운만이 작용할 뿐이다.

이익과 손해는 투자의 성과로만 봐야지 환매(매도)의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투자를 할 때 매수 타이밍을 놓칠 수는 있지만, 매도 타이밍마저 나빠지면 그 투자는 정말 엉망이 되고 말 것이다.

송동근 대신증권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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