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호황 누린 국내 기업들, 내년 경영 ‘3대 지뢰’ 도사려

  • 입력 2009년 10월 12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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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LG전자 통해 살펴보니

역습- 체질 바꾼 일본-대만 업체
TV-LCD 분야 반격 노려

대결- 원화 절상 엔화보다 빨라
1달러 1000원 이하땐 아찔

변수- 세계경기 더블 딥 우려
변수- 수출-판매 급감할 수도

기업들이 내년도 사업 계획을 수립하는 계절이 왔다. LG전자는 12∼16일을 ‘컨센서스 미팅(CM)’ 주간으로 정해 남용 부회장과 각 사업본부장이 머리를 맞대고 구본무 LG그룹 회장에게 보고할 사업 계획을 논의한다. 삼성전자도 사업부별로 내년도 사업 계획 수립에 착수했다.

이들 회사의 기획 담당 임원들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올해 이들 기업은 글로벌 불황에서도 ‘나홀로’ 호황을 누렸지만 내년에도 이런 기조가 유지될지 장담할 수 없다는 ‘신중론’이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도 최근 “삼성전자의 3분기(7∼9월) 실적이 좋지만 리스크(위험) 요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간판기업’인 삼성·LG전자를 통해 내년도 국내 기업 경영의 ‘3대 지뢰’를 살펴본다.

○ 글로벌 경쟁사의 역습

과거 ‘TV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소니는 삼성전자, LG전자에 빼앗긴 TV 시장을 탈환하기 위해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소니는 올해 초 1만6000명을 감원(減員)한 뒤 지난달 미국과 멕시코의 액정표시장치(LCD) TV 생산라인을 대만 업체인 훙하이(鴻海) 정밀공업에 매각했다. 몸집을 가볍게 하고 체질을 바꾼 것. 일본 TV 업체들에선 공격적인 움직임도 감지된다. 소니와 샤프, 도시바는 다음 달 국내업체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발광다이오드(LED) TV 신제품을 출시한다.

삼성전자, LG전자가 세계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는 LCD 패널 분야에서도 대만의 AUO, CMO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이들 업체는 LCD 패널 생산라인의 가동률을 2분기 50%대에서 최근 90%대로 높였다. 특히 대만 업체가 양안(兩岸·중국과 대만)관계 회복에 힘입어 중국에서 물량을 대거 따내 한국 업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만 업체가 중국에 기술 이전을 하는 대신 중국 업체가 대만 업체의 LCD 패널을 대량으로 구매해 줄 것이라는 설명이다.

삼성그룹 사장단 회의에서도 “내년에는 주요 글로벌 기업 간 경쟁이 올해보다 훨씬 치열해질 것”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 원화 vs 엔화

원화와 엔화의 절상 속도도 관전 포인트다. 올해 국내 기업의 실적이 좋았던 데는 일본 엔화보다 원화의 가치가 낮은 게 한몫했다. 세계 주요 시장에서 삼성전자, LG전자가 경쟁사인 일본 소니, 파나소닉보다 TV를 싸게 팔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니의 주바치 료지(中鉢良治) 부회장은 최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삼성전자와 엔고 때문에 숨도 못 쉬겠다”고 탄식했다. 하지만 이런 상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장담할 수 없다.

동아일보가 국제금융센터에 의뢰해 주요 20개국(G20) 국가 통화의 9월 한 달간 절상 속도를 비교한 결과 원화 절상률은 4.9%, 엔화 절상률은 3.9%로 나타났다. 엔화보다 원화의 절상 속도가 빠른 셈.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세계 시장에서 경쟁사인 일본 상품에 비해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된다. 이와 함께 내년 원-달러 환율이 1000원 이하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국내 기업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내년도 원-달러 환율을 1100원대로 책정하고 경영 계획을 수립하고 있지만 원-달러 환율이 1000원 이하로 하락하면 그야말로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 세계 경기도 변수

LG전자에서는 ‘더블 딥’(경기 회복 후 다시 침체)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올해에는 각국의 경기 부양책에 힘입어 그나마 수요가 유지됐지만 내년에 세계 경기가 악화되면 판매가 급감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도 내부적으론 당장 내년 초부터 공격 경영 기조를 펼치긴 무리라고 보고 있다. 내년 상반기에는 몇 년을 앞선 선행 투자가 아니면 신중하게 투자를 집행하겠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세계 수요가 확실하게 회복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적어도 정부가 ‘출구 전략’을 시행할 만큼 경기가 회복돼야 공격 경영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재용 서울대 교수(경영학)는 “올해 국내 기업들의 실적이 좋았지만 환율 등 외부 여건이 적지 않게 작용한 것이 사실”이라며 “내년에 기업들이 각종 지뢰밭을 어떻게 넘는지 지켜보면 기업들의 내공 수준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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