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007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이 본 한국경제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15일 02시 58분


■ 폴 크루그먼 교수

“한국 회복세 과장… 더블딥 올 수도”
“경기부양책 또 필요할 수도… 출구전략 상당 기간 늦춰야”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사진)는 14일 “한국경제의 회복세는 세계경제의 재고조정 효과 때문에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서울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매일경제신문 주최로 열린 ‘제10회 세계지식포럼’에서 이렇게 밝히고 “한국 경제가 빠른 회복세를 보이는지 판단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한국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조심스럽다”고 전제한 뒤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한국 경제는 상당 부분 국제교역의 회복에 의존했는데 이런 회복세가 앞으로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년 세계경제에 완만한 더블 딥(경기 회복 후 재침체)이 올 수 있다”며 “상황에 따라선 단순 경기둔화에 멈출 수도 있고, 더 심각한 더블 딥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또 “각국의 재정적자가 세계를 벼랑 끝에서 구했다. 앞으로 경기부양책을 한 번 더 써야 할지도 모른다”며 출구전략(Exit Strategy)을 상당 기간 늦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 경제의 더블 딥 우려 때문에 주요 국가들이 출구전략을 미뤄야 할 정도로 경기 회복세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경제 구조상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빠른 회복세를 보인다고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는 것이다.
미국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에 대해서는 “중국 위안화는 국제적 교환성이 없기 때문에 고려 대상이 아니고, 유로화 채권시장은 달러화보다 규모가 작다”며 “불공정해 보이긴 하지만 달러화의 위상은 오히려 강화돼 기축통화로서의 생존기간이 10년은 더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 에릭 매스킨 교수

“무리한 대출 막는
DTI 규제 긍정적”
“사전규제로 은행부실 막고
황영기 前회장 징계처럼 퇴임후라도 책임지게 해야”

“(부실경영에 대해) 은행을 처벌할 수는 없지만 은행 경영자에게는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상환 능력을 고려해 대출 규모를 제한하는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도 필요합니다.”
2007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에릭 매스킨 교수(사진)는 14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DTI 규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 적절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은행 등 금융회사들이 과도한 수익을 얻기 위해 리스크를 충분히 관리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대출 영업에 나서는 관행을 효과적으로 막는 제도라는 것이다. 미국 프린스턴고등연구소의 석좌교수인 그는 이번 학기 연세대 SK석좌교수로 초빙돼 학부와 대학원 강의를 맡고 있다.
매스킨 교수는 리처드 풀드 전 리먼브러더스 사장이나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의 사례처럼 금융회사 경영진이 퇴임 이후라도 재직 중 입힌 손실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는 ‘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금융산업이 태생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 때문에 금융위기는 앞으로도 다시 발생할 수 있다”며 “하지만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막는 사전 규제를 통해 위기의 강도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매스킨 교수는 어떤 경제활동이 다른 경제 주체에게 의도하지 않는 혜택이나 손해를 가져다주는 ‘외부효과’가 금융시장의 태생적 한계라고 지적했다. 상품시장과 달리 신용을 바탕으로 하는 금융산업은 특정 금융회사의 부도로 사람들이 이 은행과 관련 없는 다른 은행에서 서둘러 돈을 인출하는 식으로 시장의 자정 능력이 떨어지면 위기가 급속도로 확산된다는 것.
매스킨 교수는 지난해 미국발(發) 금융위기는 이런 한계와 함께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가 어우러져 발생했다고 진단했다. 또 이번 위기는 시장이 규제보다 훨씬 낫다는 이념에 지나치게 집착해 온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경고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의 해결책으로 사전적 규제와 사후적 구제의 조화를 강조했다. 다만 사후적 구제는 ‘은행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식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오는 만큼 경영 실패 때 경영진의 보너스를 환수하고 대출 규모를 제한하는 등의 규제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영자들은 수익이 났을 때는 보너스 잔치를 벌이지만 반대로 투자자들에게 큰 손해를 입혔을 때는 그에 상응하는 페널티를 받지 않습니다. 금융업계에서 ‘대마불사’라는 인식이 커지면서 도박에 가까운 영업을 벌인 금융회사들의 도덕적 해이가 이번 위기의 핵심입니다.”
매스킨 교수는 “버스를 타면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한국의 중앙버스전용차로 제도를 정착시킨 것처럼 금융회사가 적절한 규제를 받고 있다는 신뢰가 확산될 때 금융시스템도 건전해진다”고 말했다.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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