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경유지는 1991년 3월 25일 서울 구로구 구로동 용지에서 백화점(현 AK플라자 구로본점) 스포츠센터 커뮤니티 아트리움(Atrium)을 구비한 애경타운 공사에 착수했다. 스포츠센터는 헬스장 수영장 볼링장을 갖췄다. 생활 편의시설이 없던 서남부 지역에 도시문화 서비스를 위한 종합타운센터를 건설한다는 취지였다. 종합 문화시설을 통해 백화점이 있는 구로동뿐만 아니라 목동, 영등포동의 수요도 흡수할 수 있다고 봤다. 스포츠센터는 2002년 1월 복합영화상영관인 CGV로 바뀌었다.
애경타운은 대지면적 1만3794m²(4180평), 연면적 9만3947m²(2만8469평) 규모로 지하 5층, 지상 7층으로 설계했다. 기존 백화점은 일본 백화점의 영향을 받아 매장을 오밀조밀하게 지었지만 우리는 미국의 인테리어 기법을 적용해 널찍널찍하게 지었다. 백화점 동과 커뮤니티 동을 연결하는 공간은 1층부터 천장까지 뻥 뚫린 아트리움 양식으로 건설해 1층 광장까지 자연광이 들도록 하고, 광장 이름도 ‘햇빛광장’이라고 붙였다. 건축기법만으로도 당시 국내에선 드문 양식이어서 화제를 끌었다.
애경타운 건설이 진행되면서 지역 주민의 관심도 높아졌다. 구로구민 가운데 애경백화점을 아는 비율은 1992년 45%였으나 1993년 1월에는 95%로 올랐다. 구로에서는 다소 거리가 있는 강서구민의 인지율은 첫 조사에서 7%에 불과했으나 1993년 1월에는 51%까지 올랐다. 백화점에 대한 지역 주민의 잠재 수요가 많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런 수요는 머지않아 확인할 수 있었다.
포인트 모델로 애경과 연을 맺은 탤런트 고현정 씨의 사회로 개막식이 1993년 9월 10일 시작됐다.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축하공연에 나섰다. 개점일 애경백화점 안팎은 그야말로 엄청난 인파로 북적였다. 공식 행사에 초대된 주요 인사만 500명, 개점 당일 백화점을 찾은 지역 주민은 5만 명이나 됐다.
애경백화점 대표를 맡은 맏아들 채형석 사장(현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이 개막식 VIP 스피치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이 백화점을 돌아가신 아버지께 바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을 정도로 깜짝 놀랐다. 겉으론 눈물을 보이지 않았으나 속으로는 눈물샘이 터진 듯 슬픔과 감동이 흘러내렸다. 남편을 잃고 정신없이 달려온 지난 23년의 세월 동안 잊었던 회한과 피눈물이 가슴을 적셨다.
23년 전 나는 젖먹이를 포함해 네 아이와 함께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나에게 큰아들은 “엄마 걱정 마, 뽑기 장사하면 되잖아”라고 위로하던 열한 살짜리 가장(家長)이었다. 그가 이제 장성해 아버지가 다져 놓은 애경의 터전에서 새로운 미래를 열었다. 남편이 팔을 걷어붙이고 열심히 일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그곳에서 남편은 자신을 쏙 빼닮은 당신의 아들들이 아버지에게 바치는 첫 작품을 내려다봤을 것이다. 개막식 자리에 함께한 친구들은 채 사장의 말을 듣고 “저런 효자가 다 있나. 저러니 애경이 잘돼 가지”라며 나를 위로했다.
저녁에 집에서 보니 큰아들은 발톱이 빠져 있었고, 둘째 아들(채동석 현 유통 및 부동산개발부문 부회장)은 물집이 잡혀 구두를 신을 수 없을 정도였다. 발이 그렇게 된 것도 두 아들은 느끼지 못했다. 얼마나 열심히 뛰었기에 그리 됐는지 생각하니 어미로서 짠한 마음이 들었다. 두 아들은 새로 문을 연 애경백화점에 사무실을 두지 않고 주차장 건물 옥상의 임시 가건물에 뒀던 사무실에서 2004년까지 함께 근무했고, 사무실을 옮긴 지금도 한 방에서 함께 근무한다.
애경백화점은 개점 이후 지역에서 호평을 받았다. 지금은 백화점이 많이 생겼지만 당시만 해도 변변한 문화공간이나 그럴듯한 식당이 없어 인근 목동과 경기 광명시에서 애경백화점은 쇼핑 장소뿐 아니라 문화공간의 역할도 했다. 구로 일대의 첫 백화점이었던 만큼 개장 초기에는 에피소드도 많았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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